정혜신 박사·가수 박혜경씨 등 나서
“자, 여러분 모두 즐겁게 웃어봐요~.” 가수 박혜경(37)씨가 자신의 히트곡 ‘레몬트리’를 부르기 시작하자, 그 옆에서 ‘레몬트리 공작단’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인형탈을 쓰고 춤을 췄다. 아이들 얼굴엔 이내 장난기 어린 웃음꽃이 피어났다. 무대 위를 오르내리던 최아무개(10)군도 ‘케로로 중사’로 변한 자원봉사자를 따라 연신 몸을 흔들었다. 최군은 “주말에 엄마 아빠랑 못 노는데, 오늘은 정말 재밌다”고 했다.
26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청에서 쌍용차 해고자·휴직자와 그 가족들이 모여 고민을 나누고 마음을 여는 행사가 열렸다. 대량 해고와 휴직의 고통을 겪고 있는 쌍용차 노동자들을 위해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48) 박사가 마련한 자리다.
정 박사는 이들이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고 판단하고, 앞으로 8주 동안 집단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이날 행사는 그 첫 번째 자리였다.
20여명의 해고·휴직자와 가족들이 정 박사와 둘러앉아 마음속 상처를 털어놓는 동안, 평택시청 잔디밭과 2층 회의실에서는 아이들이 공연과 게임 등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박혜경씨는 “부모님들이 치유모임을 하는 동안 아이들과 놀아주려고 왔다”며 “부모가 직장을 다시 찾고 삶을 추스르는 데 조그만 도움이라도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또 “쌍용차 아이들뿐 아니라 다른 곳의 어려운 아이들에게도 제 재능을 활용할 길을 찾아볼 생각”이라고 했다.
박씨 말고도 프로레슬러 김남훈(37)씨와 직장인, 대학생 등 18명의 ‘레몬트리 공작단’이 아이들과 마술쇼, 수건 돌리기, 그림 그리기 등을 하며 함께 놀았다.
이날 부모들과 대화를 나눈 정 박사는 “이들이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이 일상에서 겪는 것과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고, 파업 뒤 쏟아진 비난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모멸감 등도 이들을 괴롭히고 있다”며 “부모가 치유에 집중할 수 있으려면 아이들을 돌봐주는 게 중요한데, 박혜경씨와 공작단이 큰 도움을 줬다”고 고마워했다.
평택/글·사진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