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보다 99명 많아…과반에는 10명 못미쳐
학생회 “실패인정 요구 안할뿐, 왜곡보도 중단을”
“안건 한개에 의미 두개 담겨 혼란 불러” 지적도
학생회 “실패인정 요구 안할뿐, 왜곡보도 중단을”
“안건 한개에 의미 두개 담겨 혼란 불러” 지적도
카이스트 학생총회서 무슨 일 있었기에
“재석인원 852명, 찬성 416명, 반대 317명, 기권 119명으로 찬성이 재석인원 과반에 10명 못 미쳐 부결됐습니다.”
지난 13일 밤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본관 앞 잔디밭에서 열린 비상학생총회에 참여한 학생들 사이에서는 뜻밖이라는 웅성거림이 새어나왔다. 최근 4명의 학생이 잇따라 자살하면서 불거진 카이스트 사태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개교 이래 처음으로 소집된 이날 비상학생총회에서 의결안건 4가지 가운데 2번 안건인 ‘경쟁 위주 제도개혁의 실패 인정 요구’가 부결됐기 때문이다. 이를 놓고 일부 언론에서는 ‘학생 절반 이상이 서남표 총장의 개혁은 실패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다른 안건인 △학교 정책결정에 학생 대표 참여·의결권 보장 제도화 △학생사회 통합 요구안 이행 △차기 총장 선출 때 학생 투표권 보장 요구 등은 압도적으로 가결됐는데, 왜 두번째 안건만 부결된 것일까?
우선 안건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반응이 많다. 비상총회에 참석한 한 학부생(2학년)은 “서 총장의 정책으로 피로감을 느끼지만 이를 실패로 인정하라는 요구까지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반대한 친구들이 있다”며 “안건에 ‘개혁실패’, ‘인정요구’ 등 두 사안이 함께 있어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만약 질문 내용을 바꿔 ‘제도개혁이 실패냐 성공이냐’ 또는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한가’라는 식으로 물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비상총회에 참석한 또다른 학부생(3학년)은 “인정하라는 요구가 없었다면 가결됐을 것”이라며 “언론 보도대로 다수의 학생들이 서 총장의 정책이 실패하지 않았다고 여긴다면 다른 안건들도 부결돼야 맞지 않느냐”고 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한 교수도 “학생들이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을 넣은 것 같다”며 “사실 2번 안건과 다른 안건의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3번 안건인 학생사회 통합 요구안의 세부사항을 보면 △차등수업료 전면 폐지 △수강 횟수 제한 폐지 △전면 영어강의 방침 개정 등 교육환경 개선 요구가 포함돼 있으며, 이들은 모두 가결됐다.
학생들 사이에는 서 총장이 주도한 개혁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을 ‘카이스트의 실패나 명예 실추’로 받아들이는 정서가 있다. 또 총장의 권위에 도전하는 걸 꺼리는 분위기도 있다. 이는 외부에서 제기되는 총장 퇴진 주장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진다. 한 대학원생은 “원래 카이스트가 소속돼 있던 과학기술부가 흡수 통폐합되면서 교육과학기술부나 다른 대학 등에서 카이스트 흔들기에 나선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학생도 있다”고 내부 정서를 전했다. 서 총장의 정책 가운데 좋은 점도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반대표를 던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학생은 “대학평가 순위가 예전보다 올라갔기 때문에 현재 정책 방향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카이스트 총학생회는 14일 보도자료를 내어 “2번 안건 부결은 학교 당국에 개혁 실패 인정을 요구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며 “학생들이 개혁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왜곡보도를 시정하라”고 요구했다.
대전/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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