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빼앗긴 필리핀 노동자·삶터 잃은 인도 주민…
KB물산 필리핀법인 노동자 “화장실 하루 3차례 2분씩”
국제민주연대·민주노총 등 인권침해 실태알리기 팔걷어
KB물산 필리핀법인 노동자 “화장실 하루 3차례 2분씩”
국제민주연대·민주노총 등 인권침해 실태알리기 팔걷어
의류업체 필스전은 케이비(KB)물산(옛 일경)의 필리핀 현지법인이다. 2004년에 노조가 설립됐다. 필리핀 노동부와 대법원이 인정한 합법노조지만, 회사는 단체교섭을 거부하고 노조원 63명을 사전통보 없이 휴직시켰다. 노조는 2006년 9월 파업에 돌입했다. 1년 가까이 공장 앞 천막농성장에서 여성노동자들이 폭염과 태풍을 견뎠다. 여성노동자 2명이 마스크를 쓴 괴한들에게 납치돼 공단 인근에 버려지는 일도 발생했다. 노조는 사쪽이 벌인 일이라고 주장했다.
필스전 노조의 투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2007년엔 다국적기업이 현지 국가의 법령을 준수토록 한 ‘오이시디(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위반으로 필스전을 오이시디 한국연락사무소에 제소했다.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지난 18일에는 2004년 필스전에서 해고당한 노동자 머를리 솔라노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가 증언하는 필스전의 노동현실은 참혹하다. “하루 8시간 일하면서 화장실 사용은 한번에 2분씩 세 차례만 허용됐다. 할당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면 잔업을 해야 했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벌로 잔업수당도 주지 않았다.”
한국 기업이 국외에 세운 현지법인에서 노동자의 인권을 탄압하거나 지역 주민과 갈등을 빚는 사례는 필리핀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인도에선 포스코가 오리사주에 제철소를 세우는 과정에서 이주를 거부하는 주민들과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캄보디아에서도 엠에이치애그로시스템이 정부로부터 소유권을 받은 땅을 개간하면서 농사를 짓던 지역주민들이 내쫓기게 됐다.
국제민주연대와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서울공익법센터 에이피아이엘(APIL), 민주노총, 좋은기업센터는 한국 기업으로부터 인권과 권리를 침해당한 외국 현지 노동자와 주민들을 돕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이들 단체는 21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현지 활동가들과 함께 한국 기업의 인권침해 사례를 알리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최근 아름다운재단으로부터 공익기금도 지원받았다.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차장은 “오이시디 한국연락사무소가 2007년 필스전 제소 건을 결론 내리도록 하는 데 활동의 초점을 맞출 방침”이라고 밝혔다. 법률 지원을 맡고 있는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은 케이비물산과 필스전을 상대로 소송도 검토하고 있다.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국내 형법은 한국인이 국외에서 저지른 범죄를 국내에서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필스전의 경우도 국내법을 통해 민형사상 소송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21일부턴 해고노동자 솔라노와 함께 케이비물산 서울사무소 앞에서 항의집회도 연다. 포스코의 인도 제철소 건설 및 엠에이치애그로시스템의 캄보디아 농지 개간 문제는 국내에서 현지 상황을 알리는 데 우선 힘을 모을 방침이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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