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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죽음의 십자가는 치워라

등록 2011-05-04 18:19

기고/‘꺼지지 않는 조명’과 ‘자살’로 논란의 중심에 선 십자가
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

십자가는 그리스도교의 대표적 상징으로서 2000년 동안 자리매김해왔다. 미래에도 변함없이 그럴 것이다. 그러나 왜 십자가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상징이 되는지, 어떤 의미로서 그러한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최근 밤하늘 도심을 빨간색으로 물들이는 기독교 교회당의 십자가 조명등이 시민들의 ‘수면권 침해 논란’으로 시빗거리가 되고 민원 발생의 빌미가 되는 지경에 다다랐다. 정부 행정기관의 옥외광고물 관리법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십자가 조명상징물을 합법화한 일에 특정 종파의 압박과 로비활동이 있던 것으로 보도되는 형국이다(<한겨레> 5월2일 기사). 마침내, 뉴스에 의하면 경북 문경 둔덕산에서는 십자가 처형 형태로 매달린 주검이 발견된 엽기적 사건으로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십자가는 로마제국의 세계통치수단적 법률에서, 반제국적 정치범과 특별한 흉악범에게 가하는 가장 가혹하고 수치스런 사형 집행 형식이었다. 당시 유대사회를 식민통치하던 로마총독 빌라도는, 예수의 신선한 혁신운동에 위기를 느낀 유대교 종교집단의 회유협박에 몰려, 예수를 십자처형 방식으로 죽였다. 정의, 자유, 평등, 사랑이 지배하는 공동체를 실현하려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예수의 처형과 더불어 끝날 줄 예상했다. 그러나 예수의 죽음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생명운동의 시작이 되었다. 초대 그리스도 공동체의 자기 정체성은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매우 역설적으로 심원하게 받아들였고, 그것은 바로 우주적 보편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 탄생의 직접 동인이 된다.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십자가’는 자기 비움, 자기희생, 낮아지고 비천해짐으로 타자를 높이고 살려냄, 비폭력적 저항과 진실의 관철,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의 실천 상징이었다. 예수의 십자가 죽임당함은 그가 약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약해지고 낮아져서 하늘의 거룩한 뜻을 이루려 함이었다. 본래 의미가 그러했던 십자가는,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 그리스도교가 공인되고 정치권력과 야합하면서 본래의 의미를 잃고 정복과 지배와 통치의 ‘십자군 군기의 장식’으로 변해갔다. 자기 비움과 겸비와 봉사와 사랑의 상징은 말뿐이고, 자기 과시와 지배통치와 종교적 힘의 상징물로 변질해갔다.

더 나아가서, 일부 근본주의자들이나 광신적 신도들에게는 ‘십자가 형태물’ 자체가 주물적(呪物的) 능력이 붙은 물신숭배적(페티시즘) 모습까지 보인다. 필자는 밤하늘에 빨간 전광십자가를 고집하는 많은 한국 개신교 목회자들과 교인들 속에서 그러한 무의식적 비신앙과 반신앙적 태도를 간파한다. 시민의 안면을 방해하는 붉은 십자가 전광판의 무분별한 남발은, 그야말로 본래 예수 십자가 정신을 천박한 종교와 우스꽝스런 조롱 대상으로 만드는 불신앙적 태도로 보이게 만든다.

밤에 도심과 마을을 붉게 밝히는 전광판 십자가를 보거나 붉은색 페인트로 십자가를 그려넣는 공격적 전도집단 행태를 보면서 그것들에 감격하거나 종교적 감동을 받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도리어, 시민적 공공의식이나 공동체 윤리를 무시하는 안하무인적인 한국 개신교의 오만과 폭력적 종교 광기성을 읽는다. 교회 첨탑의 야광조명등 십자가는 대체되어야 하고, 교회 건물 안팎에서 신중하게 종교 상징물로서 절제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마음 밖에 세워진 십자가를 신도들 마음속에 세워지도록 일대 종교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본래 참종교의 계명과 핵심 상징은 돌판이나 나무판에 기록하지 않고 마음판(心碑)에 새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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