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종교적 병역거부 선언자의 어려운 처지 변함없어
‘전과자 낙인’ 취업 힘들고 공무원 신분 박탈당하기도
‘전과자 낙인’ 취업 힘들고 공무원 신분 박탈당하기도
비종교적 병역거부운동 10년…형기 마쳐도 ‘감옥같은 세상’
햇살이 좋은 날이었다. 더디 온 봄날의 따사로움이 그를 울렁이게 했다. 지난 2일은 그의 입영일이었다. 그는 훈련소로 가는 대신 서울행 차표를 끊었다. 점심시간에 맞춰 헌법재판소 앞에 섰다. ‘병역법 위헌 결정으로 양심의 자유를 지켜달라’는 1인시위 팻말을 손에 들었다. 병무청엔 전화를 걸어 ‘병역거부’ 사실을 알렸다. 병무청은 “종교냐, 신념이냐?”고 물었다. 그는 “신념”이라고 답했다. “곧 경찰의 고발조처가 있을 것”이란 경고가 돌아왔다.
그, 이준규는 비종교적인 이유로 병역거부를 선택한 최근의 인물이다. 남들은 모두 군 생활을 마치고 직장에 다닐 스물여덟이다. 때리지 않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 교육대학에 진학했던 그는 교수에게 폭행당한 뒤 병역거부를 결심했다. 입대와 거부 사이에서 시간을 끈 것은 엄청난 두려움 때문이었다. 군대만큼 폭력적일 감옥이 두려웠고, ‘전과자’로서 살아야 할 험한 삶이 무서웠다. “여리고 약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 아끼며 사는 세상을 바라는 마음”이 두려움을 이겼다. 10년 동안 그 길을 앞장서 간 선배들의 궤적도 용기를 줬다.
그 맨 앞엔 오태양(평화재단 교육국장)이 있다. 그는 2001년 12월17일 병역거부를 공개선언했다. 수감(2004년 10월~2005년 12월) 중에도 굽힘 없이 싸웠다. 구치소 세 군데를 거치는 동안 대법원까지 법정 다툼을 벌였고,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소했으며, 국회 공청회에 참석해 대체복무제의 필요를 역설했다. 그는 한국 사회의 ‘감춰진 금기’를 ‘더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안’으로 탈바꿈시켰다. 하지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병역거부자에겐 감옥 이외의 출구가 없다. “현실을 반영한 통로를 마련해주지 않는 사회는 결국 폭발하고 만다”는 그의 우려도 여전하다.
수감생활을 마친 병역거부자들은 예비군훈련 거부에 따른 벌금과 실형, 전과자 딱지와 취업 제한으로 이어지는 ‘굴레’를 감수하며 살고 있다. 비종교적 병역거부자들 다수가 출소한 뒤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한다. ‘자발적 선택’이기도 하지만, 여느 직장 취업이 힘든 때문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의 한 병역거부자는 공무원 신분이 박탈돼 대안학교 교사로 옮겨갔고, 또다른 교사는 형기를 마친 뒤 택배 일을 하며 생활하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정현기(가명)는 서류 합격 뒤 면접에서 떨어진 것만 30차례가 넘는다. 그는 면접 때마다 이력서 병역란에 쓴 ‘면제’의 사유를 설명해야 했다. “늘 걸러지는 대상”이 되면서, 그는 “꿈의 마지노선이 한없이 추락하는 박탈감”에 시달렸다.
임재성은 수감생활(2005년 1월~2006년 5월)을 마친 뒤 ‘소수자’로 취급받는 자신을 발견했다. ‘다수자’인 군필자와 달리 병역거부 이유를 설명하라는 요구를 수없이 받았다. “배우 현빈의 해병대 입대가 영웅시되는 세상에서 병역거부는 언제나 비정상”일 수밖에 없었다. “설명하려 해도 설명을 요구하는 이들을 만족시키지 못했고, 늘 따라붙는 의심의 눈초리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출소 직후 사촌동생과 전자오락실에 갔을 때였다. 게임의 80% 이상이 탱크나 총으로 누군가를 죽여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해 평화학을 연구하는 그는 최근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를 출간해 병역거부자들의 목소리를 살려냈다.
‘촛불 의경’ 이길준은 장편소설을 쓰고 있다. 그는 2008년 7월 촛불집회 진압을 거부하며 서울의 한 성당에서 농성에 참여했다.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이들과 달리, 그는 전투경찰대설치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다. 그는 수감생활(2009년 12월 가석방)을 글쓰기로 버텼다. 현재 대학 4학년인 이씨는 ‘개인과 사회가 기억을 다루는 방식’을 소설의 주제로 잡았다. 그에게 병역거부는 소중한 기억이지만, 가장 중요한 기억은 아니다. 살면서 거쳐온 과정일 뿐인데, 사람들은 병역거부란 기억 속에 그를 가둔 채 바라본다. 그는 “사회가 병역거부자들을 타자화하고 소비하는 방식부터 넘어서야 한다”고 믿는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유별난 몇몇의 선택’이 아닌 ‘한국 사회의 숙제’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사회적 낙인’이란 폭력에서도 헤어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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