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노숙을 해오던 사람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폭행치사)로 구속기소된 노숙자에 대해 법원이 “피고인의 폭행을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해, 검찰과 경찰의 무리한 수사 관행이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서울 서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이원일)는 지난달 30일 폭행치사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아무개(38)씨에 대해 폭행치사 부분은 무죄를 선고하고, 폭행 부분만을 인정해 300만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이씨는 지난 1월19일 낮 12시께 서울 서대문구 ㄷ무료급식소에서 함께 노숙을 해오던 신아무개(38)씨와 말다툼을 벌이던 끝에 가슴을 밀어 2층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게 했다. 머리를 다친 신씨는 곧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정밀 검사를 받았으나 뒷머리가 2㎝ 찢어진 것말고는 두개골 골절이나 내부출혈 등은 발견되지 않아 곧바로 퇴원했다.
그러나 5일 뒤인 1월24일 오후 신씨는 서울 용산구의 한 여인숙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 소식을 들은 이씨는 경찰서로 달려가 “나 때문에 죽은 것 같다”며 5일 전 폭행 사실을 털어놨다. 경찰은 신씨의 부검 결과 사인이 머리 손상으로 인한 뇌출혈로 판명되자 곧바로 이씨를 폭행치사 혐의로 구속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최초 상처 치료 당시 각종 첨단 기기를 통한 진단에서 두개골 골절이나 출혈이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부검 결과 뇌출혈로 나왔다면 피해자가 폭행사건 이후 또다른 충격으로 사망에 이르는 상처를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며 “피해자는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 노숙자로서 만성 알코올 중독 상태였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친구가 숨진 데 대한 슬픔과 자책에 빠진 이씨의 진술에만 의존해 이씨에게 폭행치사 혐의를 적용한 것은 단편적인 정보를 통한 부적절한 추측”이라며 “폭행을 직접적인 사망 원인으로 보기 어려우므로 폭행치사 혐의를 제외했다”고 덧붙였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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