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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홀로코스트의 기억... 아우슈비츠 박물관 (상)

등록 2005-07-06 14:22수정 2005-07-06 14:22


아우슈비츠(Auschwitz) 이후 더 이상 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한 아도르노(Theodore W. Adorno)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홀로코스트는 살아남은 자들을 구속하는 20세기의 가장 어두운 기억이다. 그것이 남긴 수많은 슬픔과 상처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홀로코스트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기억이란 항상 망각을 동반하는 선택적 작업이다. 망각 또한 기억의 한 형태인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 무엇이 기억되고 무엇이 망각되는가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언제나 미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전제로, 현재의 문맥에서 과거를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박물관으로 남은 홀로코스트의 현장 아우슈비츠는 그런 의미에서 과거이면서 현재이자 동시에 미래다.

아우슈비츠의 원래 이름은 오시비엥침 이다. 폴란드 남부의 문화도시 크라쿠프에서 100여 킬로 떨어진 곳으로, 옛 폴란드의 병영이 있던 자리였다고 한다. 이 곳은 당시 독일이 점령한 유럽을 놓고 보자면, 그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각지로부터 대규모의 수송과 이동에도 편리한 지점이었다. 1940년 독일은 늘어나는 폴란드 정치범을 수용한다는 명목으로 이 곳에 ‘감옥’을 짓고 이름도 독일식인 아우슈비츠로 바꾸었다. 나치의 유태인 문제에 대한 최후의 해결책(Final Solution of the Jewish Question), 즉 유태인 말살정책을 실행에 옮기기 1년여 전의 일이었다. 그 후 나치의 세력이 확산됨에 따라 수용소도 늘어나 제2, 제3의 수용소가 속속 생겨났다. 1944년까지 존재했던 수용소는 모두 40여 개를 웃돌았는데, 대부분 광산이나 제철소 등 대규모의 공장 가까이에 지어졌던 것은 수용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나치의 유태인 말살 정책에 의해 이 곳에 수용된 사람들은 폴란드 출신 유태인이 가장 많았지만 소련의 전쟁 포로, 유고슬라비아, 체코, 그리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 유럽 각지에서 끌려 온 공산주의자들, 사상범들, 그리고 집시들도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요컨대 수용소는 나치 권력의 눈 밖에 난 인종적 정치적 소수자들의 전시장과 같은 것이었다. 이들은 수용소에 도착하면 즉시 분류되어 수감되었는데, 노동력이 없다고 생각되는 환자나 어린이, 노인, 부녀자 등 70퍼센트 이상은 분류나 기록의 대상조차 되지도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 수용소의 정확한 희생자를 헤아리기 어려운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인종적 정치적 소수자들의 전시장

종전 직후 그 곳의 수용자였던 알프레드 피데르키에비츠(Alfred Fiderkiewicz)가 폴란드 의회에 박물관 건립안을 제출하였고, 1947년에 아우슈비츠 제1 수용소가 ‘아우슈비츠 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사이트로 지정된 것은 1979년이었다. 이후 아우슈비츠는 정치적 관심의 초점이었을 뿐만 아니라, 문학, 예술, 영화 등 문화적으로도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그것은 홀로코스트의 기억이, 인간적인 연민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인류의 비극이었다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홀로코스트가, 뿌리 깊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나, 최근 9·11과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오늘의 국제적 갈등의 연원을 캐갈 때 도저히 피해 갈 수 없는 뜨거운 감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방식은 과거에 대한 해석이기도 하지만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아우슈비츠 박물관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특별하다고 하겠다.


수용소 자체가 박물관

▲ 아우슈비츠 제 1 수용소의 막사
아우슈비츠 박물관은 그것의 기억을 담을 건물과 유물의 수집이 필요한 여타 기념관이나 박물관과는 달리 수용소 자체가 박물관이 되었다는 점에서 출발부터 그 성격이 다르다. 수용막사와 나치 본부, 그리고 생체 실험을 했다는 병동은 전시실이 되었거나 그대로 역사의 현장으로서의 유적지가 된 셈이다. 유물도 90퍼센트 이상이 현장에서 취한 증거물들이다.

독일이 패망 후 방화 등을 통해 수용소의 흔적을 지우고자 했던 것조차 또 다른 역사적 증거로 남아있다. 현재 일반에게 공개된 곳은 아우슈비츠 제1 박물관과, 이 곳에서 약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제2 박물관인 비르케나우 수용소이다. 191에이커에 달하는 넓은 지역은 당시 수용소의 규모와 참상의 정도를 간접적으로 전해 주고 있다.

최초의 수용소였던 제1 박물관은 제2 박물관에 비해 규모는 매우 작지만, 유태인 학살을 담당했던 나치 본부와 이에 이용된 모든 시설이 집약적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수용소 안으로 들어서면 흡사 버려진 영화 세트장 같이 을씨년스러운 붉은 벽돌 건물들이 정연하게 눈에 들어온다. 모두 28개 동이다. 사진과 필름, 육성 녹음, 편지 그리고 수용소 관련 각종 서류 등 당시를 증언하는 증거들뿐만 아니라 루돌프 회스 등 수용소 책임자에 관한 재판 기록으로부터 홀로코스트에 대한 연구 결과물에 이르기까지 이 곳 아카이브의 자료는 엄청나다. 이 자료들은 1989년부터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컴퓨터에 의하여 체계적으로 관리된다고 한다. 이밖에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6천여 점의 회화, 조각품들이 있다.

수용자들의 면면을 찍은 사진과 그들이 남긴 소지품을 보면 그저 막연하게 불쌍한 유태인이었던 그들이 보다 현실감 있는 실체로 다가온다. 추상화된 유대민족의 비극이 아니라, 일상의 저자 거리에서 평범한 삶을 살았던 구체적인 개개인의 아픔이 드러나는 것이다. 푸른 줄무늬 죄수복 차림으로 번호표를 달고 있는 정면, 측면 사진은 수용소에 들어오면서 신상 파악을 위해 찍은 것으로 겁에 질리고 당혹한 표정이 역력하다. 소지품들은 품목별로 분류되어 전시되고 있다. 학살의 방, 진혼의 방 등으로 이름 붙여진 전시실에는 희생자들의 사진, 안경, 신발, 면도날, 단추, 옷으로부터 금니와 의치, 머리카락에 이르기까지 스러져 간 주인들의 절절한 사연을 대변하고 있다. 이 증거들은 전시실의 선택된 유물로서보다는 일종의 총체적 증거로서 대개 더미를 이루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지푸라기 같은 희망을 필사적으로 부여잡고 있던 그들의 종착지는 대부분 죽음이었다. 굶주림으로, 병으로, 고문으로, 때로는 과중한 노동을 견디지 못해, 때로는 의학적 실험 대상이 되어, 때로는 무모한 탈출 실패로, 또 때로는 재수 없이 지목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죽음의 벽 앞에서 공개 총살되는가 하면, 치클론 B에 의해 가스실에서 대량 살상된 후 소각되어 한 줌의 재로 사라졌던 것이다.

치클론 B라는 독가스를 살포하던 가스실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천장에 달려있는 가스 투입구는 막혀있었지만, 함께 들어간 어느 누구도 감히 한마디도 하지 못할 정도로 당시의 공포와 절망은 그대로 전해졌다. 치클론 B는 원래 독일이 페스트 등 전염병 예방을 위해 선박이나 빌딩의 소독에 쓰던 화학약품이었다고 한다. 쥐와 같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동물을 처치하기 위해 쓰이던 약품이 유태인 학살에 이용되었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만도 아닌 듯 했다. 곧 그들에게 유태인은 인간 이하의, 인간에 해로운 쓰레기였던 것이다.

시체 소각로와 폐기장에는 아직도 꺼지지 않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하고, 주로 정치범을 총살했다는 ‘죽음의 벽’ 앞에는 그 날의 총성들이 아직도 울리는 듯했다. 전기 철조망이 높이 둘러쳐진, 감시탑이 굽어보는 수용소 안 구석구석에는 그 참상과 절망이 서려 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 전시실에 걸린 수용자들의 사진


<성혜영> 박물관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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