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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서울대와 맞장뜨는 청와대의 두 얼굴

등록 2005-07-07 17:36수정 2005-07-07 17:36

서울대 정문. <한겨레> 강재훈 기자
서울대 정문. <한겨레> 강재훈 기자
전면전 선포는 ‘만시지탄’…“칼을 뽑았으면 제대로 베야”

집권 여당이 일개 대학과 ‘전면전’을 선포했다. 집권 여당의 선전포고 배후에는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통합형 논술고사 등 2008학년도 서울대 입시안을 둘러싸고 정부·여당과 서울대가 한치의 양보 없이 벌이는 기싸움은 이렇듯 심각한 ‘형식의 비대칭성’을 드러낸다. 시대를 100여년만 거슬러 올라가보면 임금과 조정 문부백관 대소신료들이 한 사액서원과 맞장뜨겠다고 벼르는 형국이다. 국제적·세계적 표준잣대로 볼 때, 이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해외토픽 감이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하나도 우습지 않다. 서울대 졸업장이 개인의 평생을 좌우한다고 믿는 ‘학벌 신화’가 아직 공고하고, 이 신화가 대한민국 최고 부촌의 부동산 시세를 떠받치는 속편 ‘강남불패 신화’로 이어지고, 입시철이면 못다핀 꽃잎이 교복을 걸친 채 아파트 옥상에서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비극’으로 장르를 건너뛰는 현실 앞에선 쓴 웃음도 쉽게 지을 수 없다. 이건 정치권력의 문제이고, 국민경제의 문제이며, 인간생명의 문제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일개 대학과 싸우는 촌극 뒤엔 ‘학벌신화’가


그래서, 자타가 공인하는 진보·개혁적 교육 전문가들은 정부·여당의 견문발검(見蚊拔劍·모기를 보고 칼을 뺌)을 보고도 박수를 보낸다. 모양새야 어떻든, 서울대의 ‘변형 본고사’가 우리 사회 공교육에 미칠 파장을 감안할 때 당·정의 이런 대응은 당연한 조처라는 데 뜻을 모으고 있다. 박경양 참교육학부모회 회장은 “이번 조처는 당연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고, 송경원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번 조처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문제삼고 있다. 서울대를 비롯한 일부 대학들이 3불 정책에 ‘도전’하도록 빌미를 제공한 책임이 정부와 여당에 있다는 지적이다. 김상봉 학벌없는사회 운영위원은 “서울대의 2008년 대학입시안이 문제가 있음에도 손을 놓고 있다가 이제 와서 대책을 내놓은 것은 정부나 열린우리당에 교육정책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서울대가 실질적으로 본고사를 보겠다고 나온 상황에서 당정의 조처는 시기적으로 늦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김진표 교육부총리를 임명할 때부터 참여정부는 교육정책을 신자유주의식 정책으로 몰아가는 것을 방조해놓고 이제 와서 이런 호들갑을 떠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김 부총리 임명 전만 하더라도 부족한대로 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 본고사 등을 금지한 3불정책 원칙이 지켜졌지만, 지금은 3불 정책이 다 무너진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대학은 산업”이라고 부추길 땐 언제고

노무현 대통령은 김진표 교육부총리를 임명하기에 앞서 “대학은 산업”이라고 ‘선언’해, 가뜩이나 신자유주의가 넘쳐나는 대학사회를 ‘상장기업’이 되도록 부추겼다. 경제관료 출신의 교육부총리 임명은 그의 선언에 무게를 싣는 당연한 수순밟기로 해석됐다. 이 때문에 법으로 지위를 보장받는 국립 서울대가 특수한 (대입) 목적으로 훈련받고 사교육으로 무장한 고교생을 입도선매하겠다고 나서고, 심지어 다른 주요대가 가세해 기부금 입학제(대학들 표현으로는 ‘기여 입학제’)까지 도입하자고 팔을 걷어부치도록 유도한 책임이 노 대통령에게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여당이 뽑아든 칼이 모기의 목은커녕 발톱만 겨냥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서울대와 전면전을 펼쳐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고 큰소리 치고 있지만, ‘3불(본고사·기부금 입학제·고교등급제 금지) 법제화’ 정도로는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는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대학 서열주의와 학벌문제 개혁이 입시제도 개혁과 같이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진상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원장은 “3불 정책 가운데 고교등급제는 대학들이 은폐된 등급제를 하기 때문에 적발하기가 어렵고, 논술시험을 허용하면서 논술형 본고사를 막겠다는 것 등은 실효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성태 상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공교육 정상화와 학벌개혁은 같이 가야하는 문제”라며 “교육개혁은 교육의 범주를 넘어서 사회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서열화 바꾸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

일부 전문가들이 ‘서울대 해체론’까지 제기하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김상봉 ‘학벌없는 사회’ 운영위원은 “대학서열화를 바꾸지 않고서는 정부 정책은 백약이 무효”라고 말했다. 송경원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은 “서열 체계를 당장 없애지 못한다면 이를 완화할 수 있는 부분개혁이라도 당장 시행해야 한다”며 “서울대가 가지고 있는 여러 기능들을 지방에 나눠주는 방식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진상 원장은 “서울대를 정점으로 대학들이 일렬로 서 있는 대학서열 체계를 바꾸지 않은 채 입시제도를 바꾸거나 통제하는 방식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며 “각 대학별 선발이 아니라 프랑스 입시 평준화 같은 방법으로 바꾸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각론의 차이를 떠나, 전문가들의 주문은 “칼을 뽑았으면 제대로 휘두르라”는 것으로 모아지고 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이승경 기자 yam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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