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회 창립…“국제가족이라 불러주오”
한국인 어머니와 주한미군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안아무개(45)씨는 1997년 살인을 했다. 아는 형님이었다.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했던 그 형님마저 자신의 어머니와 자신에게 “몸을 팔았다”, “튀기”라며 욕을 했다. 격분해 휘두른 안씨의 주먹은 운 나쁘게도 그를 교도소로 보냈다. 2003년 모범수로 가석방됐지만 그 사이 어머니는 한 많은 삶을 접고 숨졌다. 그러자 그는 한국인이면서도 한국에서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외톨이 신세가 됐다.
고등학교 1학년이 그가 받은 정규교육의 전부다. 얼마 전에는 막노동을 하다 척추를 다쳐 지금은 노숙자 신세와 다를 바 없다. 결혼은 꿈도 못 꿨다. “한국이 싫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하는 이 땅이 싫습니다.”
그나마 ‘백인계’ 혼혈인인 안씨는 형편이 ‘나은’ 편이다. 주아무개(47)씨의 아버지는 흑인이다. 갓난 아기 때 버려졌다.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다. 그 역시 고등학교도 채 마치지 못했다. 놀림을 밥 먹듯이 당했다. 취직이 안돼 자살도 여러 차례 시도했다. 혼혈인 친구들 가운데 자살을 한 경우도 많다. “자식에게 이런 고통을 물려주기 싫어 결혼은 아예 포기했습니다.”
혼혈인들이 겪어야 했던 이런 고통을 지금, 여기에서 끊어내고 한국인으로서의 권리를 찾기 위한 모임이 출범했다.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는 혼혈인과 가족, 후원회원 3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국제가족한국총연합회’ 창립대회가 열렸다. 이들은 창립취지문에서 “단일 혈통을 강조하는 ‘순혈주의’의 그늘에서 남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혼혈인들은 매도돼 왔다”며 꽉 막힌 한국 사회에 숨통을 틔우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총연합회 배기철 회장(50)은 “편견으로 물든 ‘혼혈인’이란 말 대신 외국에 나가 있는 한국인 동포들까지 포함하는 ‘국제가족’이라는 이름을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혼혈이 아닌 국제가족으로 불러 주십시오. 그것뿐입니다.” 창립대회 참석자들의 하나같은 말이었다. 김남일 기자, 오승훈 인턴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