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요구 방침…정치권-학내 문제 분리대응키로
학교와는 협의체 구성 논의…성격·구성원 놓고 난항
학교와는 협의체 구성 논의…성격·구성원 놓고 난항
서울대 학생들이 법인설립준비위원회 해체와 법인화법 재논의를 요구하며 행정관 점거 농성을 시작한 지 14일로 16일째를 맞은 가운데, 대학본부와 총학생회가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양쪽은 지난 3일과 6일 두차례 토론을 했지만 서로 입장 차이만 재확인했고 이후 공개적인 대화는 중단된 상태다.
대학본부 쪽은 점거 농성이 장기화하는 데 대한 부담이 있지만, 점거 농성 학생들에 비해서는 다소 여유가 있는 분위기다.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서라”는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오연천 총장이 농성장을 직접 찾고, 공개 토론회까지 여는 등 사태 해결을 위해 어느 정도 성의를 보였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반면 총학생회 쪽은 장기간 행정 업무를 마비시키고 있다는 대학본부 쪽의 비판에 이어 전직 총장단, 총동창회 등의 점거 농성 해제 요구 등 부정적인 여론에 밀려 곤혹스러운 처지다.
점거 농성을 통해 대학본부를 압박하는 방식만으로는 법인화법 재논의를 이뤄낼 수 없겠다고 판단한 총학생회는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 할 문제와 대학본부가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을 분리해 대응하는 식으로 투쟁 전략을 일부 수정했다. 이지윤 총학생회장은 “서로가 책임을 미루고 있으니 세 주체가 같이 해결하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총학생회는 14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법인화법 재논의와 함께 법인설립준비위원회 해체나 중단을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또 총학생회는 “총장이 교과위에 출석해 책임있는 답변을 할 수 있도록 여야가 합의하고, 법인화법에 대해 재검토하라”고 정치권에 촉구했다. 오연천 총장 쪽에는 법인화 추진을 중단하고 의견 수렴 기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총학생회는 “이 세가지 요구가 이루어지면 점거 해제를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총학생회는 이와 별도로 법인화 준비 기간이 실질적으로 너무 짧다는 점을 들어,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가 열리는 동안 한나라당과 민주당 소속 간사들에게 법인화법 시행을 1년 정도 유예하도록 합의해 줄 것을 요구할 방침이다. 이는 대학본부에 법인설립준비위원회 해체와 법인화 재논의를 요구하던 기존 태도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대학본부는 사태 해법을 찾기 위해 총학생회와 협의체 구성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협의체의 성격과 구성원을 둘러싸고 양쪽이 난항을 겪고 있다. 대학본부 쪽 관계자는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한 것이 문제의 시발이었다”며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학내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조직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총학생회 쪽 관계자는 “부총장 정도가 참여해야 협의체가 실질적인 협의 기구가 될 수 있을 텐데 대학본부 쪽 생각은 다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점거 농성이 장기화되자 학내 최대 의결기구인 대학평의원회는 가까운 시일 안에 긴급 본회의를 소집해 의견을 내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박삼옥 대학평의원회 의장은 “대학본부 쪽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 학생들과 대화하라고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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