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에 버려진 주검들 직접 거두겠다”
산악인들은 기록으로 평가받는다. 높고 험한 설산을 얼마나 올랐느냐는 게 기록을 재는 잣대다. 엄홍길(45)씨는 해발 8000m 이상의 히말라야 봉우리(독립봉) 14개 모두를 세계에서 8번째로 올랐고, 그래서 이름이 높다. 그런 엄씨는 이제 오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거두고 보살피는 일에도 열중하겠다고 한다.
에베레스트 등반 중 숨진 동료 산악인들의 주검 수색을 벌이고 지난달 13일 돌아온 엄씨는 앞으로도 눈보라를 맞으며 방치돼 있는 각국 산악인들의 주검 수습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동행한 사진작가 김우영(45)씨가 현지에서 찍은 작품 40여점을 전시(7월6~12일)하고 있는 서울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7일 만난 엄씨는 귀국 때의 검붉은 얼굴보다는 사뭇 밝아진 태를 보였다.
엄씨는 히말라야에 방치된 각국 산악인들과 셀파들의 주검이 몇 백구에 이를 것으로 짐작했다. 만인이 공인하는 산사나이인 엄씨도 등반길에 그들을 마주치면 “두렵고 무섭다”고 했다. 스스로의 운명이 그들과 다르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엄씨는 “산악인으로서 같은 길을 추구하다 사고를 당한 이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며 “하지만 몸을 가누기도 힘든 등반길에서 그들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 8000m 이상 고도지역에서 초유의 주검 수습작업을 통해 그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앞으로 다른 나라 산악인들과 힘을 합쳐 이런 일을 벌일 계획이다. 세 달이 걸린 ‘초로랑마 휴먼원정대’ 사업은 에베레스트에서 줄에 매달려 잠든 박무택씨는 찾아내 묻어줬지만 장민·백준호씨는 찾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엄씨는 올해 초 장애인들과 함께 히말라야를 오른 ‘희망 원정대’도 하반기에 다시 하고 싶은 사업으로 꼽았다. 또 산악인과 셀파 유가족들을 체계적으로 돕는 일, 네팔인들과 자매 결연을 맺은 한국인들의 현지방문 등도 구상하고 있다.
엄씨가 꼭 오를 봉우리가 하나 남아있기는 하다. 산악계에서 점차 독립된 봉우리로 인정받고 있는 로체샤르(8400m)에 내년 3월 도전한다. 지난해 가을 박무택씨와 함께 오르기로 한 것이었지만, 그 해 봄 그의 사고로 중단된 계획이다. 박씨 사진을 품고 올라 그의 영혼과 약속을 지키겠다는 얘기다. 지난해 5월에는 15좌 격인 얄룽캉(8505m)을 올랐으니, 내년 봄 계획이 성공하면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좌에 오르는 기록도 세우게 된다.
“요즘 집에서 가까운 도봉산에 오르고 하루에 1시간씩 쉬지 않고 수영을 하며 체력을 다지는 중입니다.” 엄씨가 불혹의 나이에도 산에서 살 수 있는 비결이다.
글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글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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