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파업중인 한진중공업 노동자 가족들을 위로하러 ‘희망열차 85호’를 타고 부산에 온 쌍용자동차·유성기업 노동자 가족들이 26일 오후 부산 중구 부산민주공원 민주항쟁기념관에서 한진중 노동자 가족들과 함께 강강술래를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부산/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해고자 가족이 해고자 가족에 위로건넨 ‘희망열차 85호’
쌍용차·유성 가족 80여명 한진중 가족 만나러 부산행 크레인 로봇티 입고 ‘활짝’
쌍용차·유성 가족 80여명 한진중 가족 만나러 부산행 크레인 로봇티 입고 ‘활짝’
일요일인 26일, 경기 평택시에 사는 네살배기 은서는 아침 7시에 눈을 떴다. 온 가족과 함께 난생처음 기차를 타는 날이기 때문이다. 은서네가 탄 기차는 서울에서 평택 등을 거쳐 부산으로 향하는 무궁화호 1205호, 이름하여 ‘희망열차 85호’다. 은서 외에도 30여명의 꼬맹이들이 아빠·엄마 손을 잡고 모처럼 나들이에 나섰다. 부산까지 향하는 네시간 동안 아이들은 통째로 빌린 열차 1량에서 쉴 새 없이 재잘거리며 뛰어놀았다. 강철 크레인 팔을 지닌 로봇이 그려진 하얀 티셔츠를 입은 아이들은 이동수 화백이 그려준 자신들의 얼굴 그림을 신기해했다. 은서가 기차에 탈 무렵, 부산에 사는 아홉살 은서도 잠에서 깼다. 전날 밤 엄마는 은서에게 멀리서 친구들이 오니 함께 놀자고 일러주었다. 어른들 일을 모르는 듯 보였던 은서는 이렇게 물었다. “친구들이 우리 위로해주러 오는 거예요?”
두 은서의 공통점은 ‘아빠에게 생긴 일’이다. 쌍용자동차 노동자였던 은서 아빠는 2년 전 동료들과 함께 정리해고를 반대하다 해고를 당한 뒤 복직투쟁을 하고 있다. 부산에 사는 은서 아빠도 직장인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를 막겠다며 6개월째 영도조선소에서 점거시위를 하고 있다. 쌍용차 노동자 가족 70여명은 자신들이 이미 경험했던 고통을 겪고 있을 한진중 노동자 가족을 위로하겠다며 부산행 열차를 탔다. 파업중인 유성기업 노동자의 아내·아이들 6명도 천안역에서 합류했다. 어른들이 다쳤던 만큼 아이들도 상처를 받았다. 어느 평택 아이는 아빠를 잡아갔던 전경버스를 떠올리며 버스 타기를 무서워했고, 어느 부산 아이는 김진숙 이모와 조합원 삼촌들을 죽이지 말라고 경찰에 호소했다.
‘희망열차 85호’가 목적지에 다다른 오후 1시께,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아내·아이들 30여명은 ‘♥ 희망열차 친구야 반가워’라는 문구를 들고 부산역으로 마중 나왔다. 이들도 크레인 로봇이 그려진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한진중 아이들 중에는 다리에 교정기를 심은 채 휠체어를 탄 아홉살 현서도 있었다. 현서는 생후 6개월부터 엄마 등에 업혀 있었다. 아빠가 2003년 한진중 정리해고 반대투쟁에 나서면서 엄마도 가족대책위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현서가 희귀성 난치병인 척추골간단 이형성증을 앓게 된 것이 그 때문은 아닌가 싶어 가슴이 미어진다.
성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른 두 은서는 이날 오후 부산 영주동 민주공원 민주항쟁기념관에서 손을 마주 잡았다. 휠체어에 앉은 현서는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란 노래를 오카리나로 연주했다. 청아한 소리가 들리자 평택에서 온 열살짜리 준규가 슬며시 다가왔다. 오후 3시, 빗줄기를 피해 기념관 내 소극장에서 단체 가위바위보를 시작으로 놀이마당이 펼쳐졌다. 강강술래놀이가 시작되자 세 무리로 흩어져 앉아 있던 한진중-쌍용차-유성기업 아이들이 일어나 한데 섞였다. 어른들은 마주 서서 서로 손을 맞잡고 아이들이 통과할 수 있도록 문을 만들어주었다. 아이들은 서로를 놓칠세라 손을 꽉 잡은 채 그 문 안으로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했다. 아이들이 잠시 쉬는 시간, 당장 내일 일조차 알 수 없는 한진중 노동자 아내들 얼굴에 먹구름이 어른거렸다. “엄마가 신나게 웃는 장면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어야, 더 힘든 상황을 긍정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쌍용차 가족들의 격려에 이들은 애써 웃었다. 헤어짐을 앞두고 찍은 이날 기념사진 속엔 파이팅을 외치는 어른들과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있었다. 부산/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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