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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름갖고 장난치지마!…삼순이만 아니면 되지!

등록 2005-07-09 11:35수정 2005-07-13 10:31

특이한 이름 가진 이들, ‘특이모’ 카페서 애환 털어놔

자신의 이름이 공공의 장소에서 호명되는 것에 극도로 예민한 사람들이 있다. 무슨 죄를 지었거나 대인공포가 있어서가 아니다. 이름이 특이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그들은 누군가에게 ‘꽃’이 될 수 없다는 좌절감에 사로잡힌다.

이기자, 주기자, 김삼순, 박삼식... 그들은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실제로 희진과 진헌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모른다, 김삼순이 자신의 이름을 김희진이라고 부르며 한라산에서 느끼는 희열을. 그러나 어영부영이라는 별명으로 30년을 살아온 어영이는 안다. 김삼순이 개명신청 수락을 받은 순간 울먹이는 ‘시추에이션’을.

이름으로 받은 상처 공유하며 위안얻는 유일한 안식처

희진(극중 삼순이가 개명한 뒤의 이름), 진헌(현빈의 극중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모르지만 ‘어영’, ‘삼순’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안다. ‘특이모’(특이한 이름가진 사람들의 모임)의 존재를. 그 카페에서 삼순이라는 이름에 얽힌 전설(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아 울고 있던 삼순이가 택시운전기사에게서 “삼순이만 아니면 되지 뭘”이라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져 자살을 했다는 일화)은 이미 구문이다. 그 곳의 게시판은 일반인들이 보면 배꼽 잡을 얘기들 일색일지 모르나, 특이모의 회원들은 자신의 아픔들을 공유하며 위안을 얻는 유일한 안식처다. 이 카페에서는 평범한 이름이 도리어 불이익을 당한다. 만약 김희진이나 유희진이라는 이름으로 추억을 이야기한다면 수많은 악플들로 자진 삭제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


“제 동생이름 임 신중입니다. 어릴 때부터 이쁘게 생겼다… 얘, 이름 뭐니 이러면 임신중이요! 이렇게 말하면 어른들 이상한 표정으로 본답니다” “제 이름은 배도둑이구요… 귀가 딱 트여서 보니깐 같은 학교 교복에 선배들이었는데요, 남자들이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여자거든요 ㅜㅜ). 그래서 명찰을 바로 그 자리에서 뚝 뜯어버렸어요. ‘어디 훔칠 게 없어서 배나 훔치고 다녀 크크’ 이 말은 똑똑히 기억나요.”

“외우기 쉬워서 좋다”는 덕담조차 상처

몇 가지 사례만 들어 보아도 이름에 관한 주변인들의 농담은 당사자들에게 인권침해 수준이다. 덕담조차도 그들에게는 ‘상처’다. 행여 “어영부영? 기억하기도 좋고 얼마나 좋아?”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이런 말은 그가 ‘어영부영’이 되어 보지 못한 데서 나온 발상이다. “이름 바꾸지 마, 난 삼순이가 희진이보다 더 좋아!” 이런 진헌(현빈)의 대사가 “그럼 너도 삼식이로 개명해볼래?”라는 삼순의 말 앞에서 무용지물인 것과 마찬가지다.

“저는 이름이 ‘피나요’예요-_-..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는데 -_-..ㅠ_ㅠ.. 어쩌다 제 이름이 피나요가 됐는지는 잘 몰라요..-_-..피나요..-_-? 얘 ! 맨 첫시간이라 그래서 봐주지 않아 ! - _-! 누가 이런 장난 쳐놨어 ! 이름이 피나요가 뭐니 ! 어 ?! 이러셨거든요- _-.”

삼식이 삼순이 빛과 향에 맞는 이름 불러준다면…

이제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자. 누구든 이름을 부를 권리는 있으나 그 이름으로 상처 줄 권리는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출생 시 이름을 선택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이후 이름을 고칠 권리가 있으나 철들기 전 부모의 허락을 맡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물론 주민등록이 존재하는 한 못마땅한 이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의 낭패감을 온전히 공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이 세상의 삼순이, 삼식이가 일반인들과 허물없이 어울려 놀 수 있기 위한 주변인들의 조그만 배려는 필요하다. 누군가의 이름이 언어폭력의 수준이라면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님을 되새기고 그가 자신을 뭐라 불렀으면 하는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 보자. 만나자 마자, “어영부영하지 마라” “임신중이 뭐니?”라는 말은 당사자들에겐 거의 인격살인에 가깝다. 사실 삼식이도 삼순이도 자신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조심스럽게 불러준다면 누군가에게 그들도 ‘꽃’이 되고 싶을 것이다. 이름은 소중하다. 그러나 이름이 그 자체로 상처가 되는 사람들에게 이름은 대인관계의 지뢰밭이다.

하어영 <온라인뉴스부> 인턴기자 ha5090@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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