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코스트’ 용어, 속이려는 뜻 아니다” 판단
공동대책위 “재정신청 등 계속 싸워나갈 것”
* 키코 : 통화옵션상품
공동대책위 “재정신청 등 계속 싸워나갈 것”
* 키코 : 통화옵션상품
통화옵션상품 키코(KIKO: Knock In Knock Out) 판매와 관련해 사기 혐의로 수사를 받던 은행들이 모두 무혐의 처분됐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부장 이성윤)는 19일 키코 가입으로 피해를 본 192개 중소기업이 “자신들의 이익을 막대하게 설계해놓고도 계약 과정에서 이를 속였다”며 고소·고발한 11개 은행(씨티·에스시제일·외환·신한·제이피모건체이스·산업·우리·하나·국민·경남·에이치에스비시)의 임직원 90명을 무혐의 처분했다고 밝혔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한 범위 안에서 움직이면 상품에 가입한 기업이 유리한 조건으로 외화를 팔 수 있어 이익이다. 그러나 환율이 하한선 아래(knock-out)로 떨어질 경우엔 계약 자체가 무효가 되고, 상한선 위(knock-in)로 치솟으면 기업들이 벌어들인 달러를 미리 약정된 낮은 환율로 은행에 팔아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피해 기업들의 ‘억울함’은 형사 고소로까지 이어졌다. 은행들이 상품 계약 과정에서, 기업 쪽이 특정 환율에 달러를 팔 수 있는 권리인 풋옵션과 은행 쪽이 달러를 살 수 있는 권리인 콜옵션의 가치(프리미엄)가 같은 ‘제로(0) 코스트’ 상품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콜옵션의 가치가 풋옵션의 가치보다 훨씬 높아 은행이 폭리를 취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제로 코스트’라는 용어로 은행이 기업을 속이려 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 관계자는 “기업이 내는 수수료가 없다는 의미에서 제로 코스트라는 용어가 쓰였다”며 “서비스의 대가로 은행이 일정 마진을 수취하는 것은 당연한 점을 고려할 때 ‘제로 코스트’가 콜·풋 옵션의 이론가(여러 변수를 고려해 미래 가치를 현재 가치로 환산한 가격)가 같다는 의미로 사용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1년5개월 만에 무혐의 결론이 나왔지만, 수사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해 2월 기업들이 은행들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을 때 검찰 주변에서는 수사 자체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법원이 이미 “키코 계약은 부당하지 않다”는 판결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사팀은 금융감독원에서 관련 자료를 받아오는 등 수사에 의욕을 보였고, 지난해 11월에는 키코 상품 기획서, 마진 목표치와 성과 등을 담은 회계자료, 계약 전 설명 내용을 담은 녹취록 등을 입수하기 위한 은행 압수수색 영장도 청구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은 “소명이 부족하다”며 압수수색 영장을 이례적으로 기각했다. 압수수색이 법원의 통제로 좌절되자 검찰은 임의제출 형식으로 은행들로부터 자료를 받아와야 했다. 검찰의 강제수사 방식이 법원 통제로 좌절되면서 그때부터 수사가 힘을 잃었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피해 기업들의 모임인 공동대책위는 “민사소송에서도 법원이 은행들의 손을 들어준 데 이어 검찰마저 중소업체들의 피해를 외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재정신청 등 대응책을 결정해 계속 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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