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범이 아닙니다.”
지난 4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사기죄가 인정돼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강아무개(29)씨는 서울고법에 손으로 써서 낸 항소이유서를 통해 이렇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진 보냈어요. 확인하세요”라는 내용의 스팸 메시지를 보낸 뒤 이 문자에 속아 확인 버튼을 누른 휴대전화 이용자들한테서 요금을 결제해가는 방식으로 6억원을 챙겼다는 게 그의 혐의였지만, 진짜 범인은 그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 신아무개(32)씨였다. 신 사장은 문자메시지 사기 범죄로 경찰의 수사를 받게 되자 강씨를 취직시켜준 뒤 그 대가로 “수사와 재판을 대신 받아달라”고 요구했다.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로 끝날 것”이라며 그를 안심시켰고, 하루 10시간씩 1주일 동안 사무실에서 허위자백을 위한 3종의 시나리오를 달달 외우게 했다.
그러나 불구속 기소된 강씨가 예상 외로 법정구속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강씨는 1심 선고 직후 지금까지의 ‘자백’을 송두리째 뒤집는 항소이유서를 법원에 낸 뒤 자신의 1심 변호인이었던 김아무개 변호사에게도 ‘진실’을 알렸다. 신 사장도 김 변호사에게 “진범은 바로 나”라고 시인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출신인 김 변호사는 강씨의 누명을 벗기려 하기보다 허위자백을 유지시키려고 애썼다. 입막음 조건으로 신 사장이 강씨 쪽에 5천만원을 건네는 과정을 중재하고 확인서를 받은 사람이 김 변호사였다.
이런 집요한 회유 끝에 강씨는 다시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내가 범인”이라고 주장했고, 진술 번복 경위를 수상히 여긴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부장 김영대)는 신 사장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사건 조작의 단서를 찾아냈다. 검찰은 법원의 기각에도 영장을 거듭 청구해 김 변호사 사무실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고, 결국 김 변호사한테서 돈 전달 사실이 담긴 ‘확인서’도 제출받았다. 김 변호사는 검찰 조사에서 “비밀유지의무 등 정당한 변론권의 범위 안에서 한 행위였고, 신 사장도 내게 도움을 의뢰한 것이어서 외면할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검찰은 “변호사로서 정당한 변론권의 범위를 넘어 실체적 진실 발견에 협조해야 할 의무를 위반했다”며 김 변호사를 범인도피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1일 밝혔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