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포이동 재건마을’에서 철거 과정 중 부서진 조립식 주택 위로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용역들 30분만에 7개동 와르르…두달 재건 물거품
주민들 “복구 계속” 구청 “현 위치에 임대주택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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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청과 용역업체 직원 140여명이 12일 새벽 5시께 포이동 266번지(현 개포동 1266번지) 재건마을에 들이닥쳐 주민들이 직접 지은 조립식 건물 6개 중 5개를 기습 철거했다.
이 과정에서 용역업체 직원들과 주민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주민 2명이 타박상 등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고 다른 주민 1명은 치아가 부러졌다. 주민 50여명은 이날 새벽 6시 강남구청을 찾아 6시간 넘게 항의 시위를 했다. 구청은 “이미 건립된 불법 건물을 철거하기는커녕 추가로 건립해 강제철거 조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날 기습철거는 지난 6월12일 화재로 판자촌 대부분이 잿더미가 된 재건마을 주민들과 구청이 주거대책을 놓고 두달째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터져 나온 것이다. 구청은 지난 6월 재건마을 이재민들에게 서울시 7개구에 위치한 임대주택 50가구를 마련해 거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를 거부했다. 임대료와 보증금조차 마련할 형편이 안 되는 홀몸노인이 많은데다, 주민 대부분이 마을 안에서 고물을 수집하며 생계를 해결하고 있어 다른 곳으로 이주하면 생계수단이 끊기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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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또 구청이 1991년부터 ‘시유지 무단점유’를 이유로 집집마다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까지 부과한 토지변상금을 그대로 떠안은 채 쫓겨나듯 임대주택으로 갈 수는 없다며 구청 쪽의 주거대책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재건마을은 1981년 도시빈민·부랑인 등으로 구성된 자활근로대 일부가 이 지역으로 강제이주된 데 이어, 개포4동 동사무소와 인근 공공주차장 신축부지에 살던 이들까지 강제로 옮겨오면서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주민들은 “정부가 강제로 이주시켜놓고 토지변상금을 물리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해왔다. 하지만 구청 관계자는 “토지변상금 부과는 서울시 조례에 규정된 사안이라 집행할 수밖에 없다”며 “강제이주 여부에 대해서는 국민권익위원회에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구청은 “재건마을 주거를 고집하는 주민들이 있다면 서울시와 협의해 현 위치에 임대주택을 건립·이주하도록 하고, 그 기간까지 부지 내에 임시 주거시설을 만들어 거주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포이동 주거복구 공동대책위원회는 “구체적인 계획을 통보받은 바 없어, 일단 주민들은 주거 복구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구청이 주민들에게 내놓은 대안이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한국도시연구소 김윤이 연구원은 “구청이 재건마을 주민들 상황을 적극적으로 파악해 맞춤형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임대료 부담이 크거나 생계 문제가 있는 주민들, 마을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주민들도 있으므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임대주택 모델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주거권운동네트워크 이원호 활동가는 “우선 토지변상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며 “토지변상금은 부과된 지 5년이 지나면 자동 탕감되기 때문에, 구청이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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