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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동네복판에 15층아파트? 주민들 찬-반 ‘전쟁’

등록 2005-07-11 20:23수정 2005-07-11 20:23

15층아파트 조감도
15층아파트 조감도

‘행정도시 관문’ 충남 조치원읍 신안1리

“비싸게 땅팔아 새삶 기회”“투기꾼만 배불리는 거여”

충남 연기군 조치원읍 신안1리. 고려대 서창캠퍼스와 홍익대 조치원캠퍼스 사이에 자리잡은 농촌 마을이다. 행정도시 건설 예정지와도 가깝다. 마을 토박이 50여 가구가 대학생용 원룸을 운영하는 외지인과 어울려 오순도순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이 마을에 ‘15층짜리 고층아파트 건설’ 문제가 나오면서 화합이 깨지고 분란이 일고 있다.

개발이냐, 생태마을이냐?=야트막한 산자락에 자리잡은 이 마을의 갈등은 2003년 여름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소문이 떠돌면서부터 시작됐다. 이어 지난해 5월께 한 건설회사가 주변 땅을 사들이자 대를 이어 함께 살아온 주민들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가짜서류로 용도변경해 촉발

“맑은 공기와 하늘, 경치가 뭐 그리 중요혀. 우리는 땅이나 파다 죽으란 소리여?” 아파트 개발에 찬성하는 주민들은 “땅을 비싼 값에 팔아 새 삶을 살자”며 반겼다. 이들은 아파트 건설 뒤 1천여 가구가 들어오면 대학촌의 특성인 ‘방학 중 개점휴업’을 극복하고 마을 경제도 활성화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반대 주민들은 “동네 한가운데 15층짜리 시멘트 덩어리가 우뚝 솟아난다면 마을의 아름다움이 사라질 뿐 아니라 투기꾼의 배만 불린다”며 ‘행정도시의 관문으로서 장기적 안목에서 균형 발전을 꾀할 수 있는 개발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 개발 예정지역



법적 다툼과 신안리의 앞날=건설회사가 이미 신안리 아파트 건설 예정 터 대부분을 사들인 상태이기 때문에 지구 지정 등 개발 허가만 나면 금방이라도 공사를 시작할 수 있다. 아직까지 허가가 나지 않고 있는 것은 상당수 주민들이 개발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업자들이 땅만 사들이면 거의 자동으로 개발이 가능했던 다른 곳과 달리 일단 제동이 걸린 것이다.

게다가 아파트 건설에 찬성해온 당시 마을 이장 이아무개(47)씨가 지난해 6월 초 ‘신안1리 개발위원회’ 이름으로 주민 서명을 받아 연기군에 낸 용도변경 민원이 가짜였다는 사실이 5월 뒤늦게 밝혀지면서 주민 사이의 갈등은 새 국면을 맞았다. 이 가짜 서류는 지난해 7월 아파트 예정 터를 ‘1종 일반주거지역’(4층 이하 제한)에서 ‘2종 일반주거지역’(15층까지 건축 가능)으로 바꾸는 근거가 됐기 때문이다.

반대 주민들은 △2종 변경에 앞서 건설회사 쪽이 땅을 사들였고 △2종 변경 결정을 주민들은 몰랐던 점 등을 들어 ‘건설회사-연기군-이씨’ 사이의 삼각 담합이 이뤄졌을 것이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씨는 “애초 이 땅은 층수 제한이 없는 일반주거지역인데 행정 당국이 잘못 결정해 이장으로서 땅주인의 재산권을 지키려고 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군수 “5층도 반대한다”

이에 대해 반대 주민들은 신안리 아파트저지 주민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조만간 건설교통부에 ‘대학을 사이에 둔 미개발 지역이므로 양호한 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저층 중심으로 개발해야 한다’며 애초대로 아파트 예정 터를 1종으로 되돌려 달라는 행정심판을 낼 예정이다. 또 연기군에 △투명하고 친환경적인 개발 행정 △용도변경 의혹 규명과 책임자 공개 사과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기봉 연기군수는 최근 주민간담회에서 “신안리에 5층 아파트도 반대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충남도와 연기군 실무자들은 “건축허가를 제한할 법적 근거는 없으며, 가짜 청원서류가 변경 근거가 됐다고 해도 2종을 1종으로 되돌릴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신안리 주민들의 갈등은 밀려오는 개발의 파고에 신음하는 농촌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면으로 보인다.

조치원/글·사진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주민 뜻모아 생태마을 추진”

개발반대하다 이장된 강수돌 교수

“이장이요? 주민의 손발 구실을 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꽃입니다.”

강수돌(44·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5월24일 신안1리 이장이 됐다. 전 이장이 ‘가짜 민원서류’ 사건으로 사임하자, 주민들이 새 이장 후보에 강 교수를 추천하고 90% 넘는 지지율로 당선시켰다.

1999년 신안1리 주민이 된 강 교수는 마을에 휘몰아친 ‘거대 건설자본의 독재식 막개발’에 대응해 ‘생태마을’ 건설을 제안하며 아파트 저지 주민대책위를 이끌어 왔다.

그는 이장이 된 뒤 15인 공동대표단을 꾸려 마을 일을 공론화하고, 중요한 사항은 주민총회를 열어 결정하는 투명한 의사결정 방식을 도입했다. 주민은 결정의 주체이지, 대상이 아니므로 중요한 마을 일은 함께 의견을 나누고 주민 스스로 확인해야 한다는 소신에서다.

그는 평범한 마을 환경이 얼마나 소중한 자원인지 알리고, 마을 공동체 문화를 키우기 위해 다달이 마지막 토요일마다 마을과 옆마을 어린이들을 모아 ‘신안리 자연탐사’를 한다.

9월부터는 마을 벼룩시장을 열 예정이다. 주민들이 필요한 물건을 나누며 정을 나누는 장터로 만들 생각이다.

“이장은 주민의 눈과 귀가 돼 전체 이익과 부분 이익을 조화시키는 고리입니다. 이장과 주민의 관계를 바로 세우기 위해 ‘공동이장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강 이장의 새로운 숙제다.

조치원/송인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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