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원
“최악 상황 피해 몸부림”…장기간 독방 격리 불만
편지 공개한 문성호 소장, 트위터에서 석방운동
편지 공개한 문성호 소장, 트위터에서 석방운동
18일 새벽 경북 북부 제1교도소(옛 청송교도소) 독방에서 고무장갑을 이용해 자살을 시도한 ‘탈옥 무기수’ 신창원(44)이 외부에 보낸 편지가 공개됐다. 학자처럼 정연한 논리와 차분한 분석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해 1월4일 문성호 자치경찰연구소장(경찰노조 추진위원장)에게 보낸 이 편지는 교도행정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그는 모범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을 10년 넘게 독방에 가두고 있는 가혹한 교도행정에 대해 행정소송과 헌법소원 등을 통해 문제제기를 하려고 했으며, 간접적인 방법으로 논문 작성을 준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오랜 격리생활로 인해 환청, 우울장애, 불면 등 질환을 앓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 소장이 18일 트위터에 공개한 이 편지에서 신창원은 “저는 지금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며 “인간은 인내의 한계점을 넘어서면 어떤 형태로든 극단적인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자살을 예고했다.
그는 “(탈주한 뒤 체포돼 수감된 이후) 저는 10년3개월동안 징벌 1회 받은 적이 없고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도주를 기도한 적이 없는데 10년5개월째 독방에 격리돼 있다”면서 “2009년 11월18일 청송교도소로 이송돼 손목에 수갑을 차고 다녀야 하며, 텔레비전 시청이 금지되는 등 기본적인 처우가 제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경비 대상 수용자로 이곳에 수용되면 의무적으로 모두 이런 처우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면서 “제가 위험한 행동을 보였으면 모를까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는데 중경비 시설에 수용되었으니 이 같은 처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헌법과 법의 취지에 위반되는 것같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또 “탈옥 전과자인 저는 독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진로를 변경해 담 안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는 데 온 힘을 다하려는 마음을 갖게 됐다”면서 “행정소송, 헌법소원 등 직접적인 방법과 더불어 논문 등으로 문제점을 알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 같아 신중히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 교정당국에서 과거 강력범 10여명을 독방에 엄중격리해 기본적 처우를 제한하는 실험을 했는데 수용자가 자살, 신체적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켜 몇개월 못가 실험을 중단했다”며 독거수용의 부작용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인성적인 문제, 성격적인 문제, 그리고 사회성이 부족한 문제 때문에 수용자들이 재범을 반복하는 범죄중독현상이 발생한다”고 지적하고 “그런데 수용자가 교도소에 구금되어 격리된 생활을 할 경우 수용자의 문제가 치유되기보다는 오히려 심화될 수 있는 위험요소가 많아 재범 이상의 수용자가 사회복귀를 제대로 하기 힘들다”고 현 교도행정에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그는 외국 교정행정의 우수사례 및 구금환경에서 나타나는 여러 부작용에 관한 논문과 보고서 등 자료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는 편지 마지막 부분에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언급하며 “정말 인간적이고 자애로운 분을 안타깝게 떠나보내고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또한 한명숙 전 총리의 재판 소식에 대해서도 “이젠 한명숙 전 총리께서 비슷한 일을 겪고 계시네요. 직접적인 증거없이 어느 한 사람의 일방적인 주장만으로 유죄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은 법을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고, 이런 경우엔 무혐의 처분으로 사건을 종결짓는 게 일반적인데 구속영장 청구를 해보지도 않고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하니 숨은 의도가 너무 확연히 보입니다”라고 꼬집기도 했다.
문 소장은 19일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재수감 이후 모범적인 수형생활을 하고 있는 신창원에게 ‘당신도 이렇게 할 수 있다’는 뜻으로 2009년말 영국의 장기수를 다룬 <스트레인지웨인즈 감옥 봉기> 등 미국과 영국의 감옥운동을 다룬 책 2권을 보내주었는데 이에 대한 답신으로 그에게 편지를 받았다”면서 “그동안 다른 일에 쫓겨 답장을 보내주지 못했는데 자살시도 소식을 듣고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문 소장은 “의식을 회복했다니 이제라도 답장도 하고 면회도 해보겠다”면서 트위터 상에서 신창원의 석방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문 소장은 “신창원의 자살시도는 아버지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그가 편지에서 쓴대로 희망이 없는 장기수 수용 실태 때문 일 것”이라며 “장기수의 경우 일반인보다 자살율이 몇배나 높다”고 말했다. 문 소장은 “미국과 영국의 경우 장기수들이 감옥안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따는 등 감옥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으며, 영국의 경우 노조까지 만들어서 2009년 소송을 통해 투표권까지 획득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신창원 석방운동과 관련해서 “신창원이 무기징역을 받았던 1989년의 범죄를 보면 그가 직접 살인을 저지른 게 아니라 주범 옆에 있으면서 강도상해를 방조했다는 혐의”라면서 “석방운동을 한다고 해서 당장 석방되기는 쉽지 않겠만 영국의 감옥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벤 군과 같이 한 것처럼 감옥제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의식이 회복되는대로 신창원을 찾아가서 만나고 그가 주기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홈페이지를 개설해서 재소자 권리운동을 도와주고 싶다”면서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등 뜻있는 인사들을 모아서 석방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말했다.
신창원은 1989년 3월 서울 성북구 돈암동의 한 주택에서 공범과 함께 집주인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997년 교도소를 탈옥한 뒤 체포될 때까지 2년6개월간 경찰을 따돌리며 강도와 절도를 저지르는 등 대담한 행동을 보였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사람을 해치지는 않아 의적으로 불리며 신창원 신드롬을 불러 오기도 했다.
1997년 7년 교도소에 다시 수감된 신씨는 중졸과 고졸 검정교시에 연달아 합격하며 모범적인 수감생활을 하는 등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2008년 암투병중인 이해인 수녀에게 “새장 같은 공간, 그리고 온몸을 짓누르는 압박감, 나약한 의지를 어찌할 수 없는 장벽 앞에서 절망하며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을 때 바삐 날아온 사랑이 있었다”라고 시작되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수녀를 위로하기도 했다.
김도형 선임기자/트위터 @aip209
| |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