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조폭돈 끌어 횡령·어음 남발 ‘최단기 상장폐지’
‘유상증자 참여’ 개미들 150억 손해…검찰, 16명 기소
‘유상증자 참여’ 개미들 150억 손해…검찰, 16명 기소
사채와 조폭 자금을 끌어들여 코스피 시장까지 넘보던 조폭 출신 사업가가 ‘최단기간 상장폐지’의 주인공이 됐다.
전북 익산 역전파 출신인 조아무개(48)씨는 30대 중반부터 건강보조식품, 의료기기 등 다단계 사업으로 ‘경영’에 눈을 떴다. 코스닥 상장사를 경영한 적이 있는, 외형상 번듯한 경영인으로서 무자본 인수합병이나 횡령·주가조작으로 부를 축적하는 ‘제3세대 조폭’의 전형이었다.
조씨는 그간의 ‘경력’을 인정받아 2009년 8월, 자산운용회사인 다산리츠에 부회장으로 영입됐다. 이 회사는 2008년 4월, 국토해양부에서 국내 첫 자기관리 리츠(상근 임직원이 자산의 투자·운용을 수행하는 회사) 영업을 인가받았지만 자본금을 확보하지 못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조씨는 부회장에 취임하자마자 사채업자한테서 초단기사채 179억원을 빌렸다. 대부분 주금 가장납입과 잔고증명서를 위조하려고 하루 정도만 쓰고 바로 빼서 돌려주는 이른바 ‘찍기’ 자금이었다. 지난해 8월에는 부산 해운대구에 270억원짜리 오피스텔 임대·운영 사업을 한다며 150억원을 유상증자해 성공시켰다. 조씨의 수완 덕에 다산리츠는 같은 해 9월 자기관리 리츠 회사로는 두번째로 코스피에 상장됐다.
그러나 이들은 상장 직후부터 ‘회삿돈 빼먹기’에 들어갔다. 해운대구 오피스텔 매매계약금과 서울 잠실의 상가 투자지분 매입금 중 일부인 56억원을 빼돌려 사채 원리금 등을 갚는 데 썼다. 또 150억원 유상증자가 성공한 뒤에는 임원진에게 8억원의 특별상여금도 지급했다. 유상증자 소식을 전해 들은 조폭들도 ‘한몫 잡기’에 나섰다. 범서방파 수괴급인 유아무개씨와 문아무개씨, 부두목급인 나아무개씨, 그리고 송정리파·영광파·고창파 조직원 등이 가수·개그맨, 프로야구·유도 선수, 코스닥 상장사 사주, 고급 유흥주점 마담들에게서 돈을 끌어다 조씨에게 빌려준 뒤 고율의 이자를 붙여 원리금 상환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조씨를 수시로 불러내 “회삿돈을 횡령해서라도 돈을 갚으라”며 협박·폭행했다. 조씨가 애초 조폭들한테서 빌린 돈은 14억원이었지만 폭행에 못 이겨 55억원의 채권 변제를 약속해야 했다. 이 돈을 마련하느라 무리수를 두던 조씨는 결국 감사에서 적발됐고, 한국거래소는 지난 6월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9개월 만에 이뤄진 코스피 시장 사상 ‘최단기간 상장폐지’ 사례였다. 이 때문에 150억원 유상증자에 참여한 투자자 297명은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됐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김희준)는 조씨 등 다산리츠 경영진 10명을 횡령·배임 등 혐의로, 조폭 6명을 불법 추심 혐의로 구속·불구속 기소했다고 22일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기업사냥꾼, 사채업자와 결탁한 ‘제3세대’ 조폭이 금융시장의 메이저리그 격인 코스피까지 진출한 사례를 처음 적발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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