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쌍수 한전 사장
사퇴 앞두고 작심발언
“전기료 현실화 못한 건 정부 책임 크다”
‘공기업 적자’ 대책 요구…“난 희생자”
“전기료 현실화 못한 건 정부 책임 크다”
‘공기업 적자’ 대책 요구…“난 희생자”
“만약 패소하면 정부를 상대로 소송할 수도 있다. 우리(내)가 패소하면 공기업 (주주들의) 줄소송이 있을 수 있다.”
임기를 하루 앞둔 김쌍수 한전 사장이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작심한 듯 내뱉은 말이다. 회사 쪽은 곧바로 지나가는 말로 한 얘기라며 의미를 축소했다. 하지만 김 사장의 요란스러운 퇴장을 둘러싼 풍경은 상장된 공기업이 정부 정책을 따르면서 주주 이익을 훼손했을 때 주주와 대표이사, 정부 간 법적 다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앞서 지난 2일 한전 소액주주 14명은 3년여 동안 연료비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전기요금을 인상시켜 결국 회사에 큰 손해를 끼쳤다며 김 사장을 상대로 2조8000억원에 이르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그는 이날 공기업의 임금까지 통제하는 정부의 간섭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공기업의 자율 경영, 주주 가치를 고려한 경영을 강조했다. 그는 “공기업이라도 비즈니스(사업)를 하는 상장회사는 민간회사로 보고 독립권을 줘야 하는데, 아직도 정부는 공기업을 정부 예산을 받아 쓰는 기관으로 보고 적자가 나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한발짝 나가 주주 가치를 염두에 두고 공기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정부가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나라 안팎의 주주로부터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고 봤다. 그는 “24%의 지분을 쥔 해외 주주들이 대표소송을 했을 때 감당할 수 있느냐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한전과 가스공사 등 상장 공기업은 수익과 직결되는 가격 결정 등에서 비록 손해를 보더라도 물가 안정 등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한 정부 정책을 일방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을 이러한 정책의 희생자라고 표현했다. 최근 후임 사장의 임명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돌연 사의를 표명한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한전은 그가 사장으로 온 첫해인 2008년 2조340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3년 연속 적자를 보였다. 연말께 한전의 부채비율은 150%에 이를 전망이다. 김 사장은 원가절감, 활발한 해외진출 등 많은 노력을 했지만, 적자를 흑자로 한번도 돌리지 못했다고 억울해했다. 책임은 정부 탓으로 돌렸다. 그는 “지난 10년간 등유는 93%, 경유 121%, 가스는 48% 올랐는데 전기료는 14.5%밖에 안 올랐다”고 말했다. 실제 전기요금은 원가의 90.3%에 불과하다.
김 사장은 정부의 ‘결단’을 촉구하면서, “빠른 시일 내 연료비 연동제가 되고, 적자가 나지 않도록 요금 현실화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기 초반 적자 문제를 정부 쪽에 얘기했다가 질책을 받은 굴욕을 떠올리면서,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선 전기요금 현실화가 녹록지 않다고 토로했다.
자신의 헌신을 자랑하기도 했다. 그는 “3년간 좋아하는 골프도 한 번 안 쳤는데 마지막에 이렇게 쪽박을 차니…논란이 돼 국정감사에서 들썩들썩하고 그래야 서로가 산다”며 이날 간담회를 통해 논쟁을 자초하려 했음을 숨기지 않았다. 또 김 사장은 “내 희생을 널리 알려야 한다”며 “개인적으로 명예가 훼손되고 굉장히 불쾌하지만, 저 하나면 됐지 제2, 제3의 피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주주를 향해 “죄송하다”는 말을 네번이나 반복했다. 퇴임 이후 친정인 엘지(LG)로 복귀하지 않고 쉬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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