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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구에서 맛집을 왜 찾냐구요?

등록 2011-08-29 14:07수정 2011-08-29 14:18

찜갈비(위) 따로국밥
찜갈비(위) 따로국밥
대구 출신 안수찬 <한겨레> 탐사보도팀장 기고
독특·폐쇄적 대구 사람들, 언젠가 다원성 눈뜰 것
  지난 봄, 대학 동기들과 어울려 대구에 놀러갔다. 30대 중반을 넘기면서 새삼 애틋해진 우리는 1년에 두어번씩 전국 각지를 여행한다. 최근 대구에서 사업을 시작한 동기가 제 집으로 우리를 초청했다. 마흔이 된 왕년의 사회학도 여남은 명은 대구 가는 길에 지치지 않고 수다를 떨었다.

  “그런데 대구가면 뭘 먹지?” 충청도가 고향인 어느 녀석이 물었다. “내가 검색해볼게.” 서울내기인 다른 녀석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는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대, 구, 맛, 집’을 쳐넣었다. 여러 네티즌의 글 가운데 화면 상단에 자리잡은, 우리 모두를 사로잡은 문장이 있었다. “대구에서 왜 맛집을 찾죠?”

  배를 잡고 뒹굴던 녀석들은 신이 나서 다른 검색을 시작했다. ‘대, 구, 관, 광’. 어느 네티즌이 안내글을 썼다. “관광하러 왜 대구에 가는거죠?” 낄낄대던 녀석들이 “네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을 때, 나는 사태의 본질을 피해갔다. “나 서울 사람 된지 좀 있으면 20년이야. 이젠 대구에서 길도 못 찾는다고.” 혹시 대구 사투리가 튀어나올까 조심하면서 나는 말했다.

 

 대구에서 왜 맛집을 찾죠?  

  “대구에 맛집없다”는 전국적 편견에 울컥한 대구의 민·관은 몇년 전부터 ‘대구 10미(味)’를 선정해 홍보하고 있다. 그 면면을 보면 ‘맵고 짠 맛’이 대구의 맛이다. 10가지 가운데 따로국밥, 찜갈비, 무침회, 논메기 매운탕, 복어불고기, 야끼우동 등 6가지가 ‘강력하게 매운 맛’을 특징으로 한다. 음식 자체가 온통 빨갛다.

  그나마 맵지 않은 음식인 소막창과 뭉티기(생고기)는 간장 또는 된장에 청양고추·마늘을 섞어 만든 ‘맵고 짠 소스’에 찍어 먹는다. 납작만두는 간장이 없으면 아예 먹을 수 없는 음식인데, 그 간장 소스에도 청양고추와 파가 듬뿍 들어간다. 유일한 예외가 멸치국물로 만든 누른국수다. 그런데 칼국수의 대구 버전인 누른국수 집에 가면 풋고추를 한 사발 갖다 준다. 함께 먹으라는 뜻이다.

 


 맵고 짠맛의 대표, 교촌치킨의 고향 

납작만두
납작만두
  대구 10미에서는 빠졌지만, 대구를 거쳐 전국으로 확산된 음식 역시 맵고 짜다. 미국에 체인점까지 낸 ‘교촌치킨’은 명멸하는 수많은 치킨브랜드 가운데서도 독보적이다. 90년대 초반, 경북 구미에서 시작해 대구에서 입소문을 타고 발전한 교촌치킨은 ‘의성 마늘 간장 소스’의 짠 맛으로 덤덤한 프라이드치킨 시장을 뒤집어버렸고, 뒤이어 ‘청양고추 소스’의 매운 맛으로 전국을 강타했다. 80년대 안동 지역에서 비롯한 ‘안동찜닭’ 역시 청양고추·의성마늘을 듬뿍 넣은 매운 맛으로 대구 일대를 풍미했고, 이후 서울까지 진출했다.

 대구 대표 음식 상당수는 90년대 이후에야 ‘유명세(?)’를 탔다. 1972년 10월에 태어난 나는 1991년 2월까지 대구에서 살았다. ‘대구 10미’ 가운데 나의 유년기에 새겨진 음식은 따로국밥과 납작만두 뿐이다.

  초등학교 시절, 대구 앞산(산 이름이 그냥 앞산이다) 초입에 ‘소피국’ 파는 식당이 즐비하여 아버지와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국밥을 먹었다. 나중에 따로국밥이 뭔가 봤더니 어릴 적 먹었던 그 소피국밥이었다. 중학교 시절, 분식집에 가면 항상 떡볶이와 함께 납작만두를 주문해 먹었다. 그때의 납작만두는 채소조차 섞지 않고 반죽 그대로 얇게 기름에 튀긴 ‘밀전병’이었다.

  고교 무렵인 80년대 후반, 안동찜닭이 유행했고(물론 안동찜닭은 ‘대구10미’에서 제외된다), 대학 시절인 90년대 초반, 가끔 고향친구들을 만나면 막창집에서 소주를 먹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대구에서 이런 걸 먹었느냐”고 친구들에게 불평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찜갈비·무침회·메기매운탕·야끼우동·복어불고기 등은 90년대 이후를 서울에서 보낸 나에겐 ‘듣보잡’에 가까운 음식들이다. 그 음식에 대한 추억이 전혀 없다.

 

 신선한 재료와는 거리가 먼...  

  대구 음식의 또다른 특징(아마도 단점)은 재료의 향토적 특색이 없다는 데 있다. 따로국밥은 쇠고기 선지와 살코기를 섞어 만든다. 선지국밥 또는 쇠고기국밥은 전국의 모든 장터에서 먹는다. 오징어를 주재료로 소라·고둥 등을 넣어 고추장으로 빨갛게 무친 것이 대구의 무침회다. 회무침은 전국의 모든 횟집에서 ‘사이드 디쉬’로 나온다. 매운탕의 논메기, 불고기의 복어, 찜갈비의 쇠고기, 심지어 야끼우동과 누른국수의 면에는 ‘대구 땅에서 느끼는’ 울림이 없다. 섬진강의 재첩국, 남도의 홍어회, 부산의 밀면을 먹을 때 겪는 ‘재료의 설레임’이 없다.

  이와 연관된 것이기도 한데, 대구의 대표 음식 재료 가운데 상당수가 ‘부수적·부속적’이다. 한때 대구는 쇠고기·돼지고기 막창과 함께 닭똥집 구이를 향토 음식으로 내세운 적이 있다. 소·돼지·닭의 내장 가운데 가장 값싼 부위들이다. 무침회의 오징어는 여러 생선회 가운데 가장 흔하고 저렴하다. 누른국수는 육지 고기가 아닌 멸치로 육수를 내는 데, 그것은 국물을 우려내기 위해 동원가능한 최저가의 재료다. 납작만두는 저렴한 재료의 절정이다. 돼지고기·당면·채소 등의 만두 속은 전혀 없고, 얇은 만두피만 기름에 살짝 튀긴다.

  내가 문화인류학자라면, 향토색 없는 빈한한 재료를 맵고 짜게 요리한 음식이 왜 90년대 이후 대구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났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저 ‘TK 출신 기자’에 불과하므로 몇몇 가설적 주장만 내놓을 수 있다.

 

 청양고추와 의성마늘이 만들어낸 맛  

  대구 대표 음식에 빠짐없이 들어가는 ‘독창적 재료’는 청양고추와 의성마늘이다. 태국 고추와 교배하여 매운 맛을 더 강력하게 만든 청양고추는 80년대 중반 처음 등장했다. 충남 청양과는 별 상관이 없고, 시험재배지인 경북 청송과 영양의 머리·꼬리 글자를 따서 ‘청양 고추’라 이름붙였다. 조선 시대 때부터 경북 의성은 마늘 산지로 유명했는데, 여러 마늘 가운데서도 매운 맛과 향이 강력하다. 청양고추를 주로 삼고 의성마늘을 곁들인 양념은 80년대 중반 이후에야 탄생했다. 대구 사람들은 경북 청송·영양·의성의 고추·마늘을 가장 먼저 음식에 활용하여 맵고 짜운 맛을 일궜다.

  대구에는 농·어업 기반이 없다. 한우로 유명한 안동이나 오징어·꽁치로 유명한 포항과 다르다. 싱싱한 재료가 충분치 않았던 흔적이 대구 음식에 남아 있다. 안동의 한우는 대구의 막창에, 포항의 오징어는 대구의 무침회에 자취를 남겼다. 싱싱한 재료라는 말 자체가 유년 시절의 나에겐 익숙치 않았다. 제삿상 또는 차례상 한복판에는 말린 문어와 말린 돔배기(상어)가 올라왔다. 가장 귀한 음식인 셈이었는데, 소금으로 간하여 말려낸 그 음식을 나는 먹을 수가 없었다. 무진장 짜기만 했다. 유년 시절, 집에서 즐겨 먹은 반찬은 간고등어와 쇠고기 장조림이었다. 대구는 물산이 풍부한 고장이 아니었다.

 

 대구의 라이벌, 안동  

헛제사밥. 안동 사람들이 제사를 지낸 후에 음복을 하고 남은 음식들을 모아 만든 비빔밥이다.
헛제사밥. 안동 사람들이 제사를 지낸 후에 음복을 하고 남은 음식들을 모아 만든 비빔밥이다.
  제 땅에 물산이 부족해도 음식 문화가 발달하는 경우가 있다. 왕실·귀족 문화가 강력했던 지역의 음식은 다채롭다. 권세가 강한 사람이 진귀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 후대에 그 레시피가 전파되는 법이다. 요즘의 도청에 해당하는 경상감영이 대구에 설치된 것은 17세기의 일이다. 행정구역만 보자면, 대구에도 예부터 권세가 있긴 했다.

  다만 경상도에서 실질적인 정치·경제·문화 권력의 중심지는 안동이었다. 조선 시대를 지배한 사색당파의 기원은 기호학파와 영남학파의 대립에 있다. 영남학파의 근거지는 안동을 중심으로 하여 의성·상주·봉화·영주를 잇는 경북 북부였다. 경상감영을 안동이 아닌 대구에 둔 것도 영남 세력의 발호를 견제하려는 한양 사람들의 ‘정치적 셈법’이 있었다. 지금도 안동 사람들은 대구 사람들을 낮춰 본다. 영남의 본령이 안동에 있다고 생각한다. 예부터 경상도 최고·최대의 우시장이 안동에 형성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안동 역시 물산이 풍부한 고장은 아니지만, 도도한 선비집단을 바탕 삼은 그 땅에선 향토색 강한 음식문화가 만들어졌다. 안동 간고등어는 전국민의 반찬이 됐다. 안동 한우는 요즘도 유명하다. 안동 종갓집에서 먹던 제삿상차림은 ‘헛제삿밥’의 이름을 얻어 서울 유명 한정식집의 주요 메뉴로 등장한다. 심지어 잔치 때 먹던 안동국수, 안동식혜까지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

  한국 전쟁 때, 경북 북부 지역이 북한군에 점령당한 뒤에야 대구와 안동의 지위가 바뀌었다. 전쟁 와중에 새로운 인구가 대구로 유입됐고, 정치·경제·교육의 중심도 대구로 넘어왔다. 안동에 비하자면 신흥 도시에 가까웠던 대구는 60년대 이후에야 경북을 대표하는 도시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향토 음식문화’가 대구에서 꽃을 피우기에는 아직 그 역사가 충분히 길지 않다.

  

 앞산 ‘할매 손두부’, 달성 ‘할매 곰탕’ 

  그래도 내 기억 속에는 대구의 맛집이 있(었)다. 서울 남산에 해당하는 대구 앞산은 공원이자 놀이터자 등산로다. 어린 시절, 앞산 약수터 입구에는 두부 파는 꼬부랑 할머니가 있었다. 사시사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직접 만든 손두부를 등산객들에게 팔았다. 손두부에선 김이 무럭무럭 났다.

  늦잠이라곤 도통 몰랐던 아버지는 새벽마다 내 손을 잡아 앞산을 향했고, 내려오는 길엔 반드시 ‘할매 손두부’를 먹었다. 그 자리에 서서 두부 한모씩 먹었다. 담백하면서도 감칠나는 그 두부 맛을 그저 흉내라도 내는 곳이 있다면 나는 딸을 데리고 기꺼이 새벽 길을 달려갈 것이다. 할매는 두부 식당 하나 남기지 않고, 어느날 조용히 세상을 떠나셨다. 두부 먹으러 앞산을 찾던 사람들이 많이 슬퍼하였다.

  80년대 무렵, 대구 사람들이 줄서서 먹던 식당이 있었다. 대구 달성군 현풍면에 있는 ‘할매 곰탕’ 집이다. 자가용이 드물던 시절, 식당 주변에는 자동차가 그득했다. 자동차 사이를 빙 돌아가며 사람들은 줄을 섰다. 그러거나 말거나 곰탕 할매는 무뚝뚝하게 손님을 맞았다. 뽀얀 국물은 진하고 깊어 그 안에 담긴 고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훗날 서울에 올라와 여러 설렁탕을 먹어 봤으나, 비슷한 국물조차 맛본 적이 없다. 건성으로 살짝 우려낸 게 설렁탕이고 공들여 오랫동안 우려낸 게 곰탕인가, 엉뚱한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무뚝뚝한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후대가 이어받은 식당이 지금도 있다. 옛맛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래도 서울 설렁탕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요즘 찾는 맛집은 생고기 ‘뭉티기 식당’  

  요즘 즐겨 찾는 맛집은 ‘뭉티기’ 식당이다. 부모님 뵈러 대구에 가면, 두번에 한번꼴로 뭉티기를 먹는다. 뭉티기는 ‘뭉텅뭉텅 썰어내어 만든 한무더기’라는 뜻의 사투리인데, 익히지 않은 생고기를 엄지손가락만큼 썰어서 내놓는다. 생고기는 광주를 비롯해 삼남 지방 곳곳에 유명한 식당이 적지 않다. 짐작컨대 대구 뭉티기 역시 안동 우시장에서 비롯하지 않았나 싶은데, 오늘날에는 안동보다 대구 뭉티기를 더 높게 쳐준다. 적어도 경상도에선 대구 뭉티기의 경쟁력이 형성됐다는 이야기다.

  서울에 유명한 냉면집들이 여럿 있는 것처럼, 대구에는 명성을 자랑하는 여러 뭉티기집이 있다. 대부분 20~40년 이상 장사를 했던 집인데, 녹양·송학·백합·장원 식당 등이 뭉티기로 유명하다. 그 이름에서 이미 저력이 느껴진다. 뭉티기 식당의 또다른 매력은 ‘진짜배기’ 따로국밥을 먹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선지를 넣지 않고 살코기 그대로 담백하게 우려낸 쇠고기 국밥을 뭉티기 식당에서 꼭 먹어봐야 한다.

 

 따로국밥=대구탕반=육개장 

  뭉티기를 제외하면 대구 10미의 대부분은 90년대 이후 탄생했다. 뭉티기조차 그 명성은 최근에야 형성됐다. 유일한 예외가 ‘따로국밥’이다. 물경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일제시대인 1929년 12월, 잡지 <별건곤>에 실린 글이 있다. ‘대구의 자랑 대구탕반’이라는 제목이다.

  “대구탕반은 본명이 육개장이다. 대체로 개고기를 한 별미로 보신지재(補身之材)로 좋아하는 것이 일부 조선 사람들의 통성이지만,… 개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정까지 살피고 또는 요사이 점점 개가 귀해지는 기미를 엿보아서 생겨난 것이 곧 육개장이니 간단하게 말하자면 쇠고기로 개장처럼 만든 것인데 시방은 큰 발전을 하여 본토인 대구에서 서울까지 진출을 하였다.”(<경향신문> 2011년 4월6일, ‘주영하의 음식 100년 - 개장의 변이, 육개장’에서 재인용)

  원래 개장국을 많이 먹던 와중에 재료의 부족 등으로 개고기 대신 쇠고기를 넣어 ‘개장처럼’ 국밥을 만든 게 대구식 탕밥이라는 내용이다. 개장국-쇠고기국-대구 탕반-대구 따로국밥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생각할 때, 선지가 들어간 따로국밥은 대구탕반과는 별 상관이 없는 음식이다. 개고기처럼 결대로 찢어지는 쇠고기 부위만 넣어 끓이는 육개장은 뭉티기 집에 가야 제대로 맛볼 수 있다.

 

 지상 최고의 맛, 어머니표 개장국  

  그런 면에서 내 인생의 진정한 맛집은 대구에 있는 부모님 댁이다. 어린 시절, 몸이 허약했던 나에게 어머니는 수시로 개요리를 만들어주셨다. 솥에 끓인 고기는 입안에서 녹았고, 맑은 국은 담백하여 깊었다. 서울에서 유명하다는 식당을 두루 다녔지만, 퍽퍽한 고기와 향신료 가득한 국물은 어머니의 맛에 비길 바가 아니었다.

  이 방면에 식견이 있다는 신문사 선·후배, 동료들이 대구에 내려가 어머니의 요리를 먹은 바 있는데, 그들 모두 진심어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선 시대 삼남 지방에 퍼져있던 개장의 원류가 어머니에게 흐르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데, 정작 어머니는 식당을 차릴 계획이 없다 하시니 대구를 대표하는 맛으로 이 음식을 추천하기엔 무리가 있겠다. (개고기 먹는 일에 대한 논란은 나중으로 미루련다. 음식과 관련해, 내가 가장 존경하는 것은 채식주의자고, 가장 경멸하는 것은 문화적배타주의자며, 가장 싫어하는 것은 불법도축·유통업자다. 언젠가 소·돼지·닭과 함께 모든 고기를 끊어버릴 때까지 나는 꿋꿋하게 그 고기를 먹을 것이다.)

  눈치빠른 사람은 이미 알아챘겠지만, 나는 담백한 맛을 좋아한다. 매운 맛은 음식이 아니라 양념의 맛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참된 맛은 본디 재료를 충분히 우려내는 담백함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곰탕, 개장 등 담백하여 깊은 맛이 대구에도 있다. 매운 맛보다 깊은 맛을 통해 대구의 맛 전통을 개척해 가는 게 올바른 방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대구 최악의 맛, 박통 냉면  

  대구에서 겪은 최악의 맛집이 있다. 1998년 여름, 대구 중심가인 동성로에 갔다가 기묘한 장면을 보았다. 어느 식당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펄펄 끓는 대구의 여름을 참아내고 있었다. 간판을 봤더니 ‘박통 냉면’이다. 박정희 대통령 생전에 청와대에 들어가 냉면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어느 주방장이 98년 봄 ‘박통 냉면’을 차렸고, 뒤이어 지역호텔의 외식사업부가 비슷한 이름으로 체인점까지 차렸던 것이다.

  식당 간판에는 ‘박통’의 사진과 함께 그가 행한 연설문의 구절이 인쇄되어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였다. 하필 그때 박통냉면이 탄생하고, 여기에 열렬히 호응하는 대구 시민을 보면서, 나는 고향 사람들의 정치·문화적 감성구조에 진저리를 쳤다.

  오랫동안 대구는 폐쇄적인 도시 공동체를 유지해왔다. 타지역 출신의 인구유입이 거의 없다. 대구에는 각종 계·동창회 모임이 유난히 발달해 있다. 대구에선 두 사람만 건너면 시장부터 걸인까지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다. 다양성·다원성이 희소하므로, 대구 사람들의 정치·경제·문화적 경험은 전국 차원으로 확산되기 힘들다.

  대구 사람들의 취향은 좋게 말해 독특하고, 나쁘게 말해 폐쇄적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취향을 통틀어 그렇다. 타지역 출신에 배타적이고, 극단적인 보수정치 성향에 여전히 강고한 남아선호 풍토까지 더하여 대구 사람의 취향은 종종 전국적인 비웃음거리가 되는데, ‘대구 맛집 논란’ 역시 다를 바 없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대구 사람들은 자부심과 열등감 사이에서 진자 운동을 한다. “대구에 맛집이 없다”고 말하면, 대구 사람들은 화를 많이 낼 것이다.

떠오르는 맛집 골목, 들안길   

 
대구 들안길. 들안길 홈페이지
대구 들안길. 들안길 홈페이지
 대구 수성못 근처 ‘들안길’에 가면, 전국 최대 규모의 먹자 거리가 있다. 적어도 2.6㎞에 걸쳐 왕복 8차선 도로의 양쪽과 그 뒤편으로 수많은 식당이 늘어서 있다. 남도의 삼합, 북녁의 냉면, 이국의 요리까지 한국인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음식점이 그 곳에 있다. 대구에 맛집이 없는 게 사실이라 해도, 대구에는 ‘맛집의 도가니’가 분명히 있다. 지역과 국적을 구분하지 않는 다원성·다양성이 대구 들안길에 있다. 그 곳에서 대구 사람들은 새로운 맛집의 역사를 만들고 있다.

  그런 노력을 칭찬하고 북돋아 주면, 대구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다. 옹졸한 자부심이나마 적절히 칭찬해줘야 마침내 열등과 강박을 벗는다. 정치적 다양성·다원성의 가치에 대구 사람들이 눈뜨게 되는 날도 그렇게 올 것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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