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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학 운동서클’ 벗어나야할 진보정당

등록 2011-09-09 16:21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2011년 9월4일 진보신당의 3차 임시대의원대회는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안을 부결시켰습니다. 부결은 됐지만 찬성표가 54%에 달한 것으로 봐서는 이 문제로 당은 거의 정확하게 반반으로 갈라져 있는 모양입니다. 사실, 단기적인 정치공학적(?) 차원, 즉 곧 다가올 각종 선거에 대응한다는 차원에서는 통합에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통합에 ‘잠재적인 이점’ 못지않게 여러가지 우려스러운 점들도 뒤따르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계급적으로 각성한 진보신당의 열성당원들이 민노당 당원들의 각종 ‘민주세력 대연합론’적 허상, 착각들의 실체를 열띤 토론을 통해 밝혀주고 민노당을 ‘왼쪽’으로 이끌어가리라 기대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는 반면, 다소 구시대적인 ‘민족적 감수성’과 부르주아 주류정치와 구별이 잘 가지 않는 민주세력 대연합, ‘야권 단결’ 담론 속에 안주하고 있는 민노당 안에서 진보신당 출신의 계급론자들이 그저 하나의 소수세력으로 전락해 주요사항 결정에 대한 영향을 주지 못할 위험도 엄연히 존재했습니다. 또한, 민노당의 당원 다수가 노동자나 학생, 소외된 지식인층 등이라는 점에 착안해 그 당원들을 좌파의 계급적 입장에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도 통합을 추진해볼 필요가 있다는 논리에 상당한 진실성이 담겨 있었지만, 민노당 지도부가 끝내 국민참여당 등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야합에 대한 꿈을 과감하게 버리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계급적 본질에 의거한, 원칙 있는 통합을 추진하기가 객관적으로 매우 어려워집니다. 좌우간, 당이 내린 결정은 결정인 만큼 아마도 당분간 어려운 독자생존의 길로 가면서, 민노당 등과 경우에 따라서 연합 또는 협력 등을 하게 될 셈입니다. 그 독자생존의 길에서 다시 한 번 통합 논의가 일어나 민노당과 궁극적으로 통합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부분과 무관하게, 한국적인 조건하에서 계급적 좌파 정당의 건설 과정에서 일어나는 각종 문제들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볼까 합니다.

좌파정당의 대중화, 왜 어려운가?  

 원리원칙으로 따지자면 계급적 좌파 정당에 가장 위험한 것은 한쪽으로 과도한 의회주의 등 (옛날 식으로 표현하자면) 우편향적 기회주의고, 다른 한쪽으로는 소아병적 극좌주의, 즉 ‘자폐적 지하서클’ 분위기입니다. ‘학습서클’ 등이 불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고 (당연히 필요합니다! 특히 대학 내에서.) 대중 정당과 ‘서클’은 좀 달라야 한다는 말씀이죠. 이는 원칙론에 바탕한 이야기지만, 최근의 국내 정세로 봐서는 저는 솔직하게 후자의 가능성, 즉 대중적이어야 할 정당이 잘못하면 ‘운동권 시대 후계자들의 동아리’로 전락할 가능성을 성심껏 경계하고 싶습니다. 이 부분을 특히 경계하는 이유는, 한국적인 환경에서 좌파 계급정당이 지금으로서 아직 대중화되기가 어렵고, 대중화되지 못하는 이상 과도한 의회주의 등 우파적 기회주의로 거의 빠질 기회마저도 잘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좌파 정당의 대중화가 왜 어려운가요? 이 부분을 이해하자면 최근 한국형 자본주의의 특징들을 조금 살펴봐야 합니다.

 외부에서 본다면 대한민국은 그저 하나의 커다란 ‘착취형 수출공장’으로 보입니다. 자산규모를 놓고 보면 국내총생산의 약 75%를 차지하는 삼성, 현대 등 수출 중심의 10대 재벌들이 그들의 꼭두각시에 가까운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마음대로 이(악)용하고 비정규직과 외주, 하도급 업체들의 노동자들의 피땀을 악질적으로 쥐어짜서 세계 무역 구도에 늘 융통성 있게 자신들을 끼어맞출 수 있는 것이 한국 자본주의 생존과 성장의 비결입니다. 지금 같은 경우에는 그들이 일면으로는 정보통신(IT)산업 파도를 잘 탄 측면이 있는 것이고, 또 일면으로는 ‘중국 부흥’이라는 거대한 세계사적인 흐름에 나름대로 편승을 잘한 부분은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경제성장률에서 대중국무역의 기여도는 약 52%, 즉 성장률의 절반 정도는 중국으로의 수출이 증가한 덕분입니다. 물론 중국으로 통하는 한국 자본주의의 생존 전략은 그 한계가 분명합니다. 정보통신 부문에서 중국 업체로부터 추월당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이고, 수출이 주도하고 있는 중국의 급성장도 전혀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차후는 대외적 악재로 좌초될 확률은 매우 높아도 아직까지 ‘주식회사 대한민국’은 국가부채비율 35% 등 ‘건전한 거시경제 수치’를 자랑합니다. (참고로, 미국의 국가부채비율은 94% 정도입니다.) 

대한민국, 착취형 수출공장  

 물론 알 사람은 다 아는 바와 같이 대한민국이라는 착취공장은 고용불안에 떨면서 상대적 저임금을 받고 2교대와 같은 살인적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해야 하는 ‘다수 노동자의 상상 이상의 고통’을 대가로 순항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입장에서는 이 순항이 ‘성공’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대한민국은 그저 무간지옥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살인적 착취의 효과로 아직도 한국의 무역흑자폭이 넓고 성장률이 구미권의 평균보다 2-3배 높고 국가부채비율이 구미권 평균보다 3배 낮게 나오는 등 ‘성장이 양호하다’는 현상이 당분간 지속하는 이상, 이 착취공장의 지배인들은 ‘밑엣것’들에게 양보할 수 있는 약간의 여유가 있을 것입니다. 겉치레 말 수준이긴 하지만 ‘공주님’ 박근혜마저도 ‘복지 증진 계획’을 이야기하고, 정두언 등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이 ‘보편적 복지’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현상을 바로 이와 같은 시각에서 고찰해볼 수 있습니다. 물론 ‘복지국가’를 말하는 일부 ‘노무현 지지자’도, 일부 한나라당의 소장파 의원들도 진정한 의미의 보편적 복지를 실행할 의지나 저력은 없습니다. 정말 유럽식 보편적 복지가 도입되면 ‘착취공장의 수익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절대 못하는 것이죠. 하지만, 보편적 복지까지 미치지 않더라도 저들이 예컨대 대학생 등록금 지원에 투입되는 금액을 늘린다든가 기초생활보호 대상자에게 지급되는 금액을 늘린다든가 출산격려금을 늘린다든가 등의 방식으로 ‘선심성 복지 정책’을 어느 정도 추진할 가능성은 큽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수많은 대중-특히 지역주의의 판도에 아직 사로잡혀 있는 수많은 영남, 호남인들-은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국민참여당이 제시하는 각종 색깔의 ‘당근’에 정신이 팔려 ‘민생, 서민, 복지’라는 겉치레 말의 포로가 될 확률도 커집니다. 그렇게 되면 좌파적인 계급정당이 비집고 들어갈 만한 틈이 크게 생기지 않습니다.

비정규직ㆍ영세상인에게 다가가라  

 압축하자면 아직도 수출중심 경제가 결정적인 위기를 맞지 않고 나름대로 (끔찍한 착취를 하면서) 순항하는 과정에서는 지배자들의 주류 정당들이 각종의 ‘당근’들을 제시해 다수의 노동자, 학생까지 성공적으로 꼬드길 가능성이 크며, 이 상황에서 좌파정당의 대중화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상당수 대중으로부터 격리되기 때문에 ‘자폐적 서클’ 형태로 돌아가고픈 유혹도 클 것입니다. 그래도 그 유혹을 극복하고 계속해서 대중들을 만나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하는 것은 유일한 바른길입니다. 특히 비정규직 투쟁에 늘 참여하고, 임금체납과 인신지배 형태의 살인적 착취로 고생하는 알바생들과 청년 노동자들의 우군이 되고, 대형 마트의 시장권 침해로 부도나고 자살위기로 몰리는 영세상인들 앞으로 다가가는 일은 가장 중요합니다. 이미 계급적으로 각성한 소수가 아니라 사회 각계에서 ‘착취공장의 피해자들’이 모여야 좌파정당에 미래가 있을 것입니다.


 이 착취공장의 승승장구는 영원하지도 않고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피할 수 없는 세계적인 대공황에 따라 ‘주식회사 대한민국’도 분명히 머지않은 미래에 커다란 위기에 부딪힐 것이고, 그때는 대대적인 계급적 각성과 저항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혁명적 계기’에 맞춰 좌파정당이 이미 준비돼 있어야 그 저항이 잘 조직될 수 있을 것이고, 결국에는 한국 지배층으로부터 피해를 본 모든 피해자들이 좋은 결실을 얻을 것입니다.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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