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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라디오 하차 박경철 “외압 아니다…뇌가 녹은 느낌”

등록 2011-09-19 13:58수정 2011-09-19 14:31

박경철
박경철
박경철(47·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씨가 3년여간 맡아왔던 한국방송(KBS) 라디오 프로그램 <박경철의 경제포커스>에서 갑작스레 하차한 것을 두고 외압 논란이 제기됐지만 박씨는 “외압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박씨는 19일 <한겨레>와 한 전화 통화에서 “외압은 전혀 아니고 육체적·정신적으로 너무 지쳐서 제작진과 상의한 끝에 스스로 그만 뒀다”며 “최근 한달동안 거의 관성적으로 방송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이건 청취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최근 청춘콘서트와 방송을 병행하며 잠이 부족해 힘들어했다고 밝혔다. 그는 “방송을 진행하려면 새벽 다섯시 반에 눈을 떠야 하는데 3개월간 청춘콘서트를 하느라 밤 12시에서 1시 사이에 집에 들어왔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니까 정말 뇌가 녹아버린 느낌이었다”고 토로했다.

  박씨가 제작진에게 하차 의사를 밝힌 것은 지난 14일이었다. 그리고 이틀만에 하차를 전격 발표했다. 이렇게 급작스런 하차 때문에 외압 논란에 힘이 실렸는데 박씨는 “충분히 오해할 수 있을만한 시점이긴 한데 오해하지 말아달라”고 거듭 외압 가능성을 부인했다. 그는 “내가 외압이 있었다면 있었다고 바로 얘기하는 성격”이라고 덧붙였다.

 <경제포커스>를 연출하는 한국방송 하석필 피디도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우리는 만류를 했지만 박경철씨의 입장이 워낙 완고해 하차를 결정하게 됐다”며 외압 가능성을 부인했다.  

 방송에서 하차한 박씨는 앞으로 개인적인 고민을 하는 데 시간을 더 보낼 것으로 보인다. 박씨는 “그 동안 나라는 개인에 대해 너무 놓고 살아서 앞으로 삶에 대한 고민을 더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씨는 2008년 11월부터 한국방송 제2라디오에서 <박경철의 경제포커스>를 진행해 왔다. 한국방송은 가수겸 증권 애널리스트 김광진씨를 19일부터 <경제포커스>의 새 진행자로 결정했다. 김씨는 ‘마법의 성’이라는 노래를 히트시킨 그룹 ‘더 클래식’으로 활동했던 음악인이기도 하다.  

다음은 박씨와 나눈 전화통화 일문일답.


 

-왜 하차를 결정했나

“3년여간 방송을 진행했는데 심신이 고갈됐다. 방송에 출연하려면 해외 뉴스를 다 봐야하기 때문에 아침 다섯시 반에 눈을 떠야 한다. 밤에 별일 없으면 다행인데 최근 청춘콘서트 때문에 밤 12시에서 새벽 1시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책까지 써야 했다. 그러다보니까 최근 한달 동안은 거의 관성적으로 방송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청취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하차를 결정했다.”

-최근 안철수 현상과 관련해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된 사이에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외압은 없었나.

“오해를 할 수 있을만한 시점이긴 하지만 그런 건 조금도 아니다. 내 성격상 외압이 있으면 외압이 있었다고 밝힐 사람이다.”

-그래도 너무 급작스러운데.

“정말 못견디겠다는 생각이 들어 최대한 진행자를 빨리 바꾸자고 제작진에 얘기했다. 다행스럽게도 김광진씨가 금방 나타나주었다. 좋은 후임 진행자가 빨리 나타났기에 하차도 빨리 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뭘 할 건가

“그동안 가을바람의 낙엽처럼 살았다. 이젠 정말 내 개인을 찾아야겠다. 내 오래된 꿈이 여행기를 쓰는 건데 국내·외를 가리지 않은 여행기를 쓰고 싶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 사회가 금융 자본주의에 대한 고민과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한 고민을 깜박하고 있다. 건강한 자본주의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었으면 좋겠다.”  

 

 허재현기자catalunia@hani.co.kr

  

 

박씨는 16일 자신의 블로그에 다음과 같은 고별 인사를 남겼다.  

 

라디오를 진행한 지가 벌써 3년 입니다. 돌아보면 불명확하고 어눌한 발음을 가진 사람이 TV도 아닌 라디오를 3년이나 진행하면서, 이만큼의 사랑을 받았던 경험은 제 인생에서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저는 방송이나 언론은 건강한 비판자의 역할, 자본과 권력에 대한 건강한 견제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었고, 그 점에서 저처럼 비교적 자유로운 입장에 있는 사람이 그 중심을 잃지 않아야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지난 3년 사이 중간중간 아슬아슬한 고비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KBS내에 아직 심장이 살아있는 스텝들의 열정에 힘입어 지금까지 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떠나야 할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또 비워지면 채워야하는 이치도 잊지 말아야 하고요.

그 점에서 이번에 청춘콘서트 일정, 그와 동시에 석달간 밤을 세운 탈고작업등으로 정신적 에너지를 완전히 쏟아낸 상태에서 굳이 관성적인 방송을 계속하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밀린 공부도 하고. 여행도 좀 다니면서 제 자신을 재충전하는 작업을 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너무 과분한 믿음과 성원을 보내주신 청취자 여러분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여기서 인사드리고자 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아래는 오늘 방송에서 읽었던 고별사입니다.

 

지난 몇십 년간 관리자본주의에서 시장(금융)자본주의로 전환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서, 경제발전이 근로자와 대중의 삶의 질도 개선시킬 수 있다는 전통적인 믿음이 사라졌습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자본권력이 대의민주주의적 절차에 의해 대중의 위임을 받은 정치권력을 누르고 국가사회의 어젠더를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상은 골드만삭스를 가버먼트삭스(government socks)라 부르는 미국에서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은 겉으로는 완전한 민주주의체제인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부권력이, 자본이 제공하는 정치자금과 인력풀로부터 대단히 자유롭지 못한 나라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의 금융위기인데, 2000년 이후 2010년까지 10년간 미국민의 개인소득은 증가하지 않았지만 미국의 GDP는 19퍼센트나 증가했습니다. 그럼 늘어난 19퍼센트는 과연 어디로 갔을까요?

이것이 위기의 핵심입니다. 신자유주의의 번성으로 지난 수십 년간 자본은 점점 비대해졌지만, 편중된 자본축적은 도리어 찬양되었습니다. 시장주의는 기본적으로 ‘상대적 욕망’을 찬양하고 부추김으로써 부를 축적하는 과정보다는 결과물인 부의 크기를 경배하는 천민자본주의가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옆집에서 사람이 굶어죽는데도 만석꾼의 창고에서는 쌀이 썩어나가는 세상을 만들어 냈고, 이러한 자기파괴적인 시스템은 현대 시장자본주의의 가장 큰 숙제가 되었습니다. 굶어죽는 사람이 늘어간다면 만석꾼의 창고는 약탈을 피할 수 없을 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문제를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습니다.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마차가 절벽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당장은 떨어지지 않을 테니 말을 멈추거나 방향을 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사고방식입니다.우리는 역사의 배경이 될 수는 없습니다. 역사의 주인공으로서 우리 공동체를 지키고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가치를 공유하며 공감과 연대의 정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 점에서 언론이나 방송이 해야 할 역할은 건강한 비판자의 역할입니다.

자본과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비판자의 역할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라는 합리를 위해 움직이는 것입니다. 지난 3년간 공영방송인 KBS 채널을 통해 전송된 이 프로그램에서 저와 제작진은 이 점을 잊지 않으려고 나름 애써왔습니다. 사실 그 과정에서 어려움이 적지 않았고, 중간중간 고비도 없지는 않았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하지만 부족함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다만 비록 제대로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지라도 초심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은 해왔다고 감히 생각합니다. 물론 거기에는 제작진과 KBS 라디오국의 심장이 펄떡이는 프로듀서분들의 격려가 큰힘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발음도 시원찮은 제가 3년이나 라디오를 진행할 수 있기도 했습니다.

이제 저는 이쯤에서 떠나려 합니다. 스스로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떠날 자리를 아는게 중요하니까요...

앞으로 청취자 여러분과의 인연을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박경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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