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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전신마비…입에 막대 물고 쓴 글…
이런 말보단 문학으로 평가 받고파”

등록 2011-09-28 20:36수정 2011-09-28 22:40

이서진 작가가 27일 경기도 안산시 사동 작업실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안산/이정아 기자 <A href="mailto:leej@hani.co.kr">leej@hani.co.kr</A>
이서진 작가가 27일 경기도 안산시 사동 작업실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안산/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심훈문학상’ 수상 이서진씨
책상 위엔 <표백>, <미당시집>, <사기열전> 등 책 수십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실내는 방금 내린 커피 향이 가득했다. 작가의 작업실답다. 한가지 다른 점이라면 큰 바퀴와 전선이 이리저리 달린 전동휠체어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는 것뿐이다.

28일 소설가 이서진(본명 이윤자·45)씨의 경기도 안산 작업실을 찾았을 때, 이씨는 방문 밖으로 몸을 길게 내밀며 반갑게 인사했다. 이씨는 최근 소설 <강변에 서다>로 제15회 심훈문학상 수상자에 선정됐다. 이씨는 전신마비 장애인이다. 그래서 불편한 손 대신 입에 막대를 물고 꼬박 석달에 걸쳐 수만자 분량의 원고를 써냈다. 이씨가 원고를 쓰는 모습은 ‘신기’에 가까웠다. 그는 맨 처음 젓가락처럼 생긴 25㎝ 남짓한 나무막대를 입에 물었다. 불편한 왼손을 마우스에 걸치고 입에 문 막대로 천천히 마우스를 움직이다 클릭을 하니 한글 프로그램이 열렸다. 이어 입에 문 막대로 모음 한 개, 자음 한 개씩을 번갈아 눌러 컴퓨터 화면에 글자들을 새겨 나갔다.

“그땐 어떻게 죽을까만 생각했어요.”이씨는 26년 전 사고 이야기부터 담담히 꺼냈다. 이씨는 스무살이던 1985년,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이 마비됐다. 삶의 의지를 잃고 식음까지 전폐하다시피 했던 그는 혹여 딸이 들을까 소리를 죽여가며 밤새 울던 어머니를 보고 비로소 장애를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건 보고·말하고·생각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취미를 붙인 게 독서였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2년6개월 동안 하루 15시간씩 책을 읽었어요. 정말 ‘죽기살기’로.”

그는 수줍게 웃으며 연애 스토리도 풀어놓았다. “사고 뒤 10년 동안 책만 읽으며 살았는데, 문득 책 밖 세상도 궁금해졌어요.” 그는 당시 유행했던 피시통신 하이텔의 동호회 ‘두리하나’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거기서 이씨는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한 남자를 알게 됐다. 이씨는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밝히며 그의 호의를 거절했지만, 남자는 “오프라인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렇게 ‘영화 같은’ 사랑이 시작됐고, 이씨는 1996년 이현수(47)씨와 결혼했다.

“아이 낳고 기르며 평범한 결혼생활을 하던 2001년 어느 날 남편이 신문에 실린 ‘장애인 문학상 공고’를 가져오더니, 한번 응모해 보라더군요.”

남편의 설득에 넘어가 쓴 그의 첫 작품 ‘연명’은 장애인 문학상에서 가작을 수상했다.

“신기했어요. 그러면서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2009년 ‘그리자벨라를 위하여’로 천강문학상 금상을 받으며, 이씨는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심훈문학상 당선작 ‘강변에 서다’는 번역과 시간강사 일을 하며 살아가는 한 부부의 위태로운 삶을 그린 소설로, 심사위원들로부터 “우리 시대가 이야기해야 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다뤘다”는 호평을 받았다.


“전신마비, 장애, 막대를 입으로 물고 쓴 글과 같은 수식어를 달고 알려지기보다는 당당히 문학으로 평가받고 싶어요.” 이미 올겨울부터 쓸 장편소설 구상을 시작했다는 이씨는 “언젠가는 가야의 역사를 다룬 소설도 쓸 것”이라며 밝게 웃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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