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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통령 오건말건 주민들은 오직 “집값 걱정”

등록 2011-10-12 16:27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 뒤 거주할 사저 부지인 서울 서초구 내곡동 20-17번지 한 주택의 정문(왼쪽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 뒤 거주할 사저 부지인 서울 서초구 내곡동 20-17번지 한 주택의 정문(왼쪽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칼럼] 내곡동 주민들 만나보니…
봉하마을서 환영받은 노 전 대통령과 비교 ‘씁쓸’
10일 이명박 대통령의 사저가 들어서게 될 서울 내곡동 주민들을 만나보았다. 마을은 축제 분위기가 아니었다. 뒤숭숭했다. 골목 곳곳에서 주민들은 이런 저런 얘기들을 하고 있었지만 대체로 인터뷰를 피했다. 생각을 드러내길 꺼려했다.

 “진짜 올까 걱정했는데 결국 오네요.” 한 주민이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곳에 와서 살게 될 거란 소문은 꽤 오래 전부터 돌았지만 주민들은 반신반의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주민이 가볍게 내뱉은 한 마디 단어가 그냥 지나치려던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걱정? 왜 대통령이 이사온다는 데 걱정이 든다는 것일까.

 주민들에게는 이 대통령의 사저가 자신들의 집값 상승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내곡동은 오랫동안 그린벨트에 묶여 있던 탓에 건축물 증축도 묶여있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얼마 전부터 관할인 서초구청에 건축물 증축을 요구해왔었다. 그런데 변수가 나타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저다.

 주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 동네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과 오히려 ‘개발혜택 논란’을 피하기 위해 구청이 역차별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엇갈리는 듯 했다.

 실물경제에 열심히 참여해도 부자 되기 어려운 세상에서 주민들이 집값에 관심을 두는 걸 탓할 수는 없다. 다만 좀 씁쓸했던 것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내는 기대의 내용이었다.

 대통령이 이사오는 것을 반대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결국, 주민들에게 중요한 건 이 대통령이 주민들의 집값 상승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여부뿐이었다. 놀라울 만큼 차갑고 냉정했다.

 대통령을 나랏님으로 여기며 무조건 존경하던 시대를 벗어났다는 점에서 주민들의 이런 반응은 일견 다행스러운 반응일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에게서 기대하는 점이 오로지 돈과 연관된 것 뿐이라는 점에서는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심하게 말하면, 주민들에게 이명박 대통령은 ‘돈’일 뿐이었다. 민주주의, 인권, 평화, 통일, 애국, 이런 가치는 이 대통령을 설명하는 내용이 아니었다. 딱 그만한 수준의 대통령에 대한 그만한 기대랄까.

 2008년 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그의 말년 인기가 형편없었다는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향인 봉하마을에 내려갔을 때 전국 각지에서 모인 1만여명의 사람들로부터 극진한 환영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야, 기분 좋다” 외치며 고향에 발을 들였다.


 이런 생각이 든다. 적어도 국민들에게 노무현이란 사람은 원망의 대상이었을지언정 내치고 싶은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곳 저곳으로부터 상처받아 가쁜 숨을 내쉬며 겨우 고향에 돌아온, 그래서 어딘가 보듬어주고픈 한 사람으로 비쳤던 것 같다. 애증이랄까. 밉지만 미워할 수 없어 다시 안아주게 되는, 그런 사람.

 그러나 ‘엠비’에게선? 아직 그가 퇴임을 한 것은 아니지만, 내곡동 주민들의 반응만 보자면, 엠비는 보듬어주고픈 사람은 아닌 듯하다. 내 집값 상승에 도움이 되면 환영받을 인물이고, 그렇지 않다면 불청객일 뿐인 듯하다.

 왜 이럴까. 엠비에게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오로지 투기, 부동산, 고소영, 친재벌, 이런 것들 뿐이다. 국민을 위해 인생을 바친, 그러다 때로 상처도 받고, 그래서 보듬어주고픈 영웅의 이미지가 전혀 없다.

 이 대통령 스스로 자초한 일인 것 같다. 취임 이후부터 늘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했지만 말과 행동은 달라보였다. 재벌과 부패한 관료들에게는 매우 관대했고 국민에게는 늘 가혹했다. 바른 말 하는 사람들은 구속되기 일쑤였고, 구속을 면하면 사찰당하거나, 직장에서 쫓겨났다. 성과는 부풀리고 치적 홍보하기에만 바빴다. 그에게서 유일하게 기대했던 경제성장마저도 재벌들에게 다 돌아가는 모양새다. 매번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그가 하는 모든 사업은 투기세력과 어떤 식으로든 맥이 닿아 있었다. 이러니 대통령에게 애증의 마음을 갖게 될 가슴 속 빈공간마저도 사라진 것 같다. 그저 내 집값이나 상승시켜주면 그만일 뿐.

 우리가 뽑은 대통령을 우리 스스로 미워하며 살게 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대통령도 괴롭고 국민도 괴로울 거다. 그래서 이 대통령이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대통령에게는 1년 가량의 임기가 여전히 남았기 때문이다. 국민을 감동시키고 그의 진정성을 느끼게 하기에 1년 이란 시간은 적은 시간이 아니다.

 부디 남은 임기 동안 이 대통령이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 환골탈태 해주었으면 좋겠다. 이 대통령도 내곡동에 발을 딛으며 “야, 기분 좋다” 말할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니겠는가.

   허재현기자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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