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요구 못담은 대법관 지명에 혼쭐
2003년 8월12일 대법원 회의실. 대법관 제청자문위원회에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했던 강금실 당시 법무부 장관과 박재승 대한변협회장이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대법원이 기존 관행대로 대법관을 제청하려는 마당에 더 이상의 참여는 적절치 않다”는 이유였다.
참여정부 출범 뒤 첫 대법관 인선을 앞두고 시민사회단체들이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를 요구하며 대법관 후보 추천 운동을 벌이는 등 국민참여 분위기가 무르익은 때, 최종영 대법원장이 기존의 관행대로 김용담(사시 11회) 광주고등법원장 등 법원장 3명을 제청자문위원회에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대법관 제청 파문’은 144명 판사들의 항의 서명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법원 안팎에서 대법원장의 퇴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벼랑 끝에 몰린 최 대법원장이 내놓은 건 ‘여성법관’ 카드였다. 같은 해 8월18일 ‘전국 판사와의 대화’를 소집해 내부 반발을 봉합한 그는 이틀 뒤 전효숙(사시 17회)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한대현 헌법재판관의 후임으로 지명했다. 지난해 조무제 대법관의 후임으로 제청된 사람은 40대의 김영란(사시 20회) 대전고법 부장판사였다. “파격과 관행 인사를 섞어 반반씩 한다는 게 대법원장의 구상”이라는 얘기가 법원 안에서 흘러나왔다.
실제 1월 최 대법원장은 자신이 마지막으로 제청하는 대법관 후보로 양승태(사시 12회) 특허법원장을 선택했으며, 양 법원장과 대법관 자리를 다퉜던 이공현(사시 13회) 법원행정처 차장은 헌법재판관으로 지명됐다.
법원의 한 판사는 “일부 ‘파격’ 인사는 사회적 요구에 떠밀려서 한 것이지, 경력 많은 법관이 대법관이 돼야 한다는 최 대법원장의 생각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며 “대법원 구성도 정치적인 환경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옛날 방식으로 회귀할 수 있으므로, 새 대법원장 인선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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