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가니>가 큰 반향을 불러온 뒤 정부가 부랴부랴 사회복지시설 실태점검에 나섰지만, 이마저 졸속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3일까지 전국 미신고 시설 10곳을 대상으로 1차 조사를 마쳤다. 이어 다음달 중순까지 사회복지재단 10여곳과 개인운영 신고 시설을 포함한 119곳, 특수학교와 병립된 장애인생활시설 45곳의 실태점검을 마칠 계획이다.
이 조사는 복지부가 처음 벌이는 대규모 사회복지시설 실태조사다. 임채민 복지부 장관도 “부작용이 없도록 시간을 두고 철저히 조사하겠다”며 의지를 내보인 바 있다. 그러나 실태조사원 ㄱ씨는 “문제가 많다고 보고됐던 곳인데도, 공무원을 대동해 원장과 함께 차 마시고 얘기하는 데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썼다”며 “미리 조사일정을 전달받은 것인지, 답변을 맞춰둔 기색이 역력했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 실태조사를 나갔던 ㄴ씨는 “1~2시간 짧은 조사에 그쳐,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중증장애인들은 제대로 심층적인 면접을 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조사원 ㄷ씨는 “조사 대상 시설이 갑자기 변경됐고, 조사 방법이나 목적에 대한 교육도 없는 형식적인 조사였다”고 했다.
보통 이런 실태조사는 충분한 기간을 두고 준비를 한다. 현재 경상남도와 지역 장애인단체가 준비중인 법인 실태조사엔 대상 선정, 조사 방법 설계 등에 6개월이 걸렸다. 지난해 이정선 한나라당 의원실과 시설인권연대, 복지부가 함께 한 ‘장애인 미신고시설 인권실태조사’도 실사단이 6개월에 걸쳐 22곳을 조사한 바 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여준민 간사는 “법인이 빠진 개인시설 등을 위주로 한데다, 실태조사의 기본조차 갖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장애인단체들이 모인 ‘도가니대책위’의 조백기 집행위원장은 “이런 식의 조사로는 제2, 제3의 인화학교 사건을 결코 막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복지부 관계자는 “인권침해 우려가 많은 곳을 1차로 조사했다”며 “준비가 짧고 시간이 모자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앞으론 이를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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