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민(왼쪽)-이국철(오른쪽)
동시 영장청구, 왜?
비자금·뇌물공여 혐의 등 이회장이 주타깃
검찰 “신 전차관은 영장 발부 어려울 수도”
비자금·뇌물공여 혐의 등 이회장이 주타깃
검찰 “신 전차관은 영장 발부 어려울 수도”
검찰이 17일 금품수수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과, 관련 의혹을 제기한 이국철 에스엘에스(SLS) 회장의 사전 구속영장을 동시에 청구하는 예상 밖의 ‘강수’를 뒀다. 계속해서 의혹을 제기하며 검찰과 ‘숨바꼭질’을 해온 이 회장의 신병을 확보하고, 동시에 대통령 측근비리의 상징처럼 부각되고 있는 신 전 차관도 함께 처벌해 논란의 소지를 없애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그러나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를 살펴보면 검찰의 주 표적은 이 회장인 것 같다. 검찰은 이 회장에게 △9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횡령)하고 △수출보험공사를 속여 선수금환급보증금(RG) 12억 달러를 받아냈으며(사기)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등에게 금품을 건넸다고 발언해 이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신재민 전 차관에게 법인카드 등 금품을 제공한 혐의(뇌물공여) 등 4가지를 동시에 적용했다. 어느 혐의 하나도 간단하거나 가볍지 않다. 그만큼 영장발부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반면 신 전 차관에겐 ‘포괄적 뇌물수수’ 혐의가 적용됐다. 이 회장이 여러 차례 “신 전 차관에게 준 것은 대가성이 없다”고 했지만, 검찰은 정권의 핵심 실세 중 한 사람인 신 전 차관이 그런 ‘독특한 지위’로 인해 여러 가지 포괄적인 청탁을 받았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 안팎에선 신 전 차관에 대한 영장 발부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의 한 간부는 “직무의 영역이 매우 넓은 대통령·국무총리·국회의원 정도에게 포괄적 뇌물죄가 인정될 수 있을 것”이라며 “문광부 차관은 업무 영역이 한정돼있는 자리여서 포괄적 뇌물죄가 적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법원은 판례를 통해 개별적인 직무 관련성과 청탁 내용이 특정되지 않아도 죄를 물을 수 있는 포괄적 뇌물죄의 처벌 대상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 몇몇 고위 공무원으로 한정하고 있다. 재벌이 건넨 비자금 수천억원을 받아챙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전 전 대통령을 보좌하며 금품을 받아 챙긴 안현태 전 청와대 경호실장, 정태수 한보 회장에게서 금품을 받은 권노갑 전 의원 등이 포괄적 뇌물죄로 처벌받은, 드문 사례들이다.
그런데 검찰은 2008년 3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문화체육관광부 1·2차관을 지낼 때 신 전 차관이 이 회장한테서 회사 명의의 법인카드를 건네받아 사용한 1억여원 상당을 포괄적 뇌물로 본 것이다.
대법원 판례 등을 모르지 않는 검찰도 신 전 차관에 대한 포괄적 뇌물죄 적용이 ‘모험’이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법리적으로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검찰 입장에서는 여론의 비판이 있고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어서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한 측면이 있다”며 “신 전 차관은 영장 발부가 어려울 수도 있다. 법원에서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일단 검찰로서는 여론의 관심이 높은 의혹 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고, 구속영장 발부 등 사법적 판단은 법원에 ‘공’을 넘기겠다는 것이다.
이국철 회장의 구속영장이 이날 청구됨에 따라 그가 공개하겠다던 ‘비망록’의 내용이 한층 더 주목받게 됐다. 이 회장은 “신재민 건은 (전체 사건의) 10분의 1밖에 안 된다. 검찰·정치인·경제인 비리가 모두 있다”며 “구속될 경우 비망록을 모두 공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