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회사서 빌린 차입금 갚아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심재돈)는 17일 이국철(49) 에스엘에스(SLS)그룹 회장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4가지 ‘범죄사실’ 중 하나로 포함된 900억원 횡령 건은 “창원지검 수사 때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혐의”라고 밝혔다. 1억~2억원도 아닌 900억원이라는 거액의 회삿돈 횡령 혐의가 2년이 지난 시점에 뒤늦게 밝혀진 셈이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이 회장은 “2009년 12월10일 창원지검은 내가 횡령한 사실이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며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범죄를 알고도 조사를 못한 당시 수사 검사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당시 창원지검 간부는 “회사 전체를 다 수사할 수는 없는 것이고, 비자금의 원천을 못 찾았다면 모를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검이 새로 찾아냈다는 횡령 혐의는, 창원지검 수사에서 출발한다. 2009년 9월부터 3개월 동안 에스엘에스 비자금 의혹을 수사한 창원지검 특수부는 그해 12월 이 회장을 분식회계 등 혐의로 기소하면서, 이 회장이 2007년 6월, 싱가포르 해운회사인 오션탱커스로부터 들여온 차입금 1억달러를 자본인 것처럼 꾸며 허위 재무제표를 공시했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검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 회장이 선주들한테서 받아놓은 선수금 8000만달러를 빼돌려 오션탱커스의 차입금을 갚는 데 쓴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 관계자는 “용도가 정해진 돈을 다른 곳에 쓰면 횡령이 되는데, 앞서 수사한 세광쉬핑도 선수금을 이런 식으로 쓴 사실이 드러나 횡령죄로 유죄가 선고됐다”며 “선수금이 없어지면 수출보험공사가 전액 변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죄질이 나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또 검찰은 에스엘에스그룹이 싱가포르 법인을 통해 비자금 75만달러를 조성한 사실도 밝혀냈다고 한다.
이런 ‘성과’를 두고, 검찰은 “세광쉬핑, 시도상선 등 조선업계 비자금 수사를 하면서 노하우가 쌓여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 한쪽에선 ‘총력전’의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창원지검 특수부보다 수사 경험, 검사 경력이 풍부한 검사들이 5명이나 투입돼 집중 수사한 결과라는 것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사업을 한 사람들의 경우 작심하고 수사하면 뭐든 혐의 사실이 나오게 돼 있다”며 “이국철 회장이 바깥에서 계속 떠드는 상황을 이제 그만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검찰이 달려든 결과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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