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학생들끼리 때아닌 ‘동아리방 퇴거’ 갈등
동아리연합회장 퇴거요청 공고
졸업생 “달라진 대학 풍속 충격”
동아리연합회장 퇴거요청 공고
졸업생 “달라진 대학 풍속 충격”
“수배자 방 빼!”, “못 빼!”
최근 고려대에서는 때아닌 ‘수배자 동아리방 퇴거’ 논란이 일고 있다. “그동안 수배자들이 관행적으로 이용해 온 동아리방을 빼라”는 쪽과 “학우들을 대표해 투쟁을 하다 수배자 신세가 된 학생을 내모는 것은 가혹하다”는 쪽이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다.
지난 11일 교내 동아리가 모여있는 고려대 학생회관에는 ‘정치수배자인 정태호 전 총학생회장은 2년째 사적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동아리 방에서 나가달라’는 내용의 퇴거 요청 공고문이 붙었다. 이는 임용수 동아리연합회(동연) 회장(영문과 3)이 붙인 것으로, 임 회장은 “정씨가 수차례 대화 요청에도 응하지 않는 등 동아리방 배정에 대한 동연 회장의 권한을 인정치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려대에는 수년 전부터 학내 정치수배자들이 관행적으로 사용하는 동아리방이 존재해왔다. 정태호 전 총학생회장은 등록금 인하 요구 시위 등을 벌이다 지난 2009년 4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경찰의 수배자 명단에 올랐고, 그 뒤 관행에 따라 이 방을 2년째 사용하고 있다.
임 회장의 퇴거요구 공고문이 게시되자, 학생회관에는 이를 반박하는 대자보들이 연이어 붙었다. 동연 소속 윤아무개씨는 대자보를 통해 “학우들을 위해 등록금 인하 운동을 하다 수배자가 된 학생을 내쫓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고대 재학생 커뮤니티인 ‘고파스’에도 퇴거요구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번 일은 학생운동권에 대한 비운동권 동연 회장의 탄압”이라는 ‘정치적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임 회장은 “운동권 탄압은 얼토당토 않다”며 “대표자회의 등 공식 절차를 밟아 효율적인 사용 방법을 결정하자는 것뿐”이라고 반박했다. 이번 논란이 운동권에 대한 대학사회의 달라진 시각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는 지적도 나온다. 고려대 졸업생 박아무개(30)씨는 “수배문제를 불법행위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보는 후배들의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며 “우리 때와 달리 운동권을 바라보는 학우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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