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병 가혹행위로 부대이탈·자살 잇따르자 “직업경찰 대체”
경찰 “2015년 이후 논의할것”
경찰 “2015년 이후 논의할것”
국가인권위원회는 상습적인 구타·가혹 행위로 물의를 빚고 있는 전·의경 제도의 폐지를 경찰청장과 국방부 장관, 행정안전부장관, 기획재정부 장관 등에게 권고했다고 25일 밝혔다.
앞서 인권위는 △선임의 상습 구타로 혈액암이 발병해 사망한 박아무개 의경이 속한 충남지방경찰청 소속 부대 △신입대원 6명이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하며 집단 이탈한 강원지방경찰청 소속 307전경대 △부대 복귀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심아무개 의경이 소속된 인천 중부경찰서 방범순찰대를 지난 1월 직권조사했다.
인권위는 이를 통해 2007년과 2008년 ‘전·의경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종합 제도 개선 권고’ 이후에도 권고 내용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고, 관련 제도와 관행에서도 개선할 점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구타·가혹 행위 예방을 위한 대책 마련과 훈련 체계 정비, 피해자 보호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며 “궁극적으로는 전·의경 제도를 폐지하고 직업 경찰관으로 대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인권위는 또 전투경찰대설치법상 전·의경의 주요 임무가 대간첩작전 수행임에도 현실적으로는 시위 진압 등 경찰의 보조 인력으로 운용되고 있어 법률이 정한 설치 목적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인권위가 실시한 직권조사 결과를 보면, 부대 선임자들의 구타·가혹 행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혈액암으로 숨진 박 의경의 경우, 2009년 5월 아산기동대 1중대에 배치되자마자 내무반 안에서 저녁 점호를 하며 번호를 늦게 외쳤다는 이유로 침상을 잡고 선 상태에서 가슴을 7~8차례 발로 구타당했다. 배치받은 지 한 달 만인 2009년 6월에는 당진 현대제철 시위진압을 위해 대기 중이던 버스 안에서 암기사항을 외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얼굴과 머리를 손바닥으로 10여 차례 맞았다. 박 의경이 이런 사실을 부대에 신고했지만 지휘관들이 가혹행위를 묵인하고 방조·축소 처리한 것도 인정됐다. 박 의경은 중대에 배치받은 2009년 5월부터 12월까지 내부반이나 행정반 사무실, 소대버스 등에서 26차례에 걸쳐 선임에게 가혹행위를 당했으며, 이 때문에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같은 해 12월 혈액암 진단을 받고 이듬해 6월 숨졌다.
강원지방경찰청 소속 의경 신입대원 6명과 부대 복귀를 앞두고 목숨을 끊은 인천 중부경찰서 소속 심아무개 의경 역시도 비슷한 이유로 14~17차례에 걸쳐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인권위의 전·의경 제도 폐지 권고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전경은 이미 2012년부터 차출하지 않기로 국방부와 합의가 됐고, 의경은 직업경찰 선발 등에 따른 예산 부담 문제로 2015년까지는 2만5000명 규모를 유지하되, 그 이후에 다시 폐지 여부를 논의하기로 했다”며 “2008년부터 올해까지 전·의경 1만8000여명을 줄이는 대신 4800명의 직업경찰을 선발해 경찰관기동대 50개 부대를 운영하는 등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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