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강일택지 내에서 오피스텔 분양사업을 하던 김아무개(51)씨는 건설경기 악화로 투자금 유치에 여려움을 겪던 중 아는 사람으로부터 ‘인도네시아 왕실 자금’을 관리한다는 장아무개(64)씨를 소개받았다. 장씨는 “내가 인도네시아 왕실 재단 돈 300조원을 운용하는데, 이 가운데 수천억원을 한국에서 진행되는 각종 건설사업에 투자할 계획”이라며 “투자 유치를 원하면, 보증금조로 1억원을 먼저 달라”고 말했다. 장씨는 한국정부를 대리하고 있다는 김아무개(54) 변호사의 서초구 서초동 법무법인 사무실로 김씨를 불러 위조된 외국은행 지급보증서까지 보여줬다. 현직 변호사가 사업에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김씨는 장씨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1억원을 건넸다.
그러나 실제로 인도네시아에는 왕실 자체가 없는 것은 물론, 장씨는 지난 2009년 5월 동일한 수법으로 사기를 쳤다 구속을 당한 전과까지 있었다. 김씨는 이런 황당한 일을 겪고도 “그럴리가 없다”며 “곧 장씨가 투자금을 유치해 줄 것”이라며 자신이 사기당한 사실을 믿지 못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인도네시아 왕실 자금을 관리한다고 속여 투자 미끼로 김씨 등 7명에게 수억원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장씨를 구속하고, 범행을 도운 변호사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1일 밝혔다.
경찰의 말을 종합하면, 장씨와 김 변호사는 건설업자인 김씨 돈 1억원을 가로챈 것 외에 지난 2005년 4월~2010년 10월까지 스위스 유비에스 은행에 예치된 인도네시아 왕족 재산 40조원을 관리하는데, 이 가운데 12조원을 경이 안성 지역 신축 아파트 사업에 1천억원, 제주도 풍력·태양광 발전소 건설사업에 500억, 김포시 풍무동 지역 신축아파트 개발사업에 2500억 등을 투자하겠다고 접근해, 또다른 피해자 6명에게 11억5000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장씨는 피해자들을 꾀기 위해 자신이 투자하는 사업자금 상당액이 4대강 등 정부사업에 투자됐으며, 김 변호사가 정부 쪽 대리인이라고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황당하기 그지없는 사기수법임에도 피해자들이 감쪽같이 속아넘어간 것은 현직으로 활동하는 김 변호사가 범행에 가담했기 때문”이라며 “투자금을 유치한 정부부처와 담당자를 알려달라는 피해자들의 요구에도 ‘극비리에 진행되는 사업’이라고 둘러대 피해자들이 사기당한 사실을 확인할 길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씨 등 7명 외에도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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