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서 무죄…고문조작에 희생
6년 옥살이-이근안 고문시인-재심청구
6년 옥살이-이근안 고문시인-재심청구
“피고인은 무죄!”
함주명(74)씨는 ‘왈칵’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이호원)가 15일 열린 함씨의 재심사건 선고공판에서 “함씨가 고문으로 인해 한 거짓자백을 유죄의 증거로 인정할 수 없고, 전향간첩 홍아무개씨의 진술이 시간이 흐를수록 엇갈리는 등 믿기 어렵다”며 무기징역이 선고된 원심을 깬 것이다.
재판장의 판결선고가 이어지는 십여 분 내내, 뺨을 타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 방울방울에는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살아온 22년의 응어리가 녹아 있는 듯했다.
함씨가 느닷없이 간첩으로 몰린 것은 1983년이었다. 어느날 아침 서울 종로구 기독교회관 앞길을 걷다가 납치되듯 끌려간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는 ‘고문 기술자’ 이근안씨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씨는 그에게 “북한의 지령을 받아 30년 동안 남파간첩으로 활동했다”는 진술을 강요했고, 그때부터 ‘악몽’ 같은 고문이 시작됐다.
몽둥이로 온몸을 때리는 것은 물론이고, ‘칠성판’에 몸을 묶고 얼굴에 수건을 뒤집어씌운 다음 샤워기를 들이대 숨을 못 쉬게 하는 물고문, 새끼발가락에 전깃줄을 감아 전류를 흘려보내는 전기고문이 무려 45일 동안 계속됐다. “고정간첩으로 암약해 왔다”는 거짓자백을 하고 나서야 죽음보다 더한 고문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함씨에게 죄가 있다면, 6·25 전쟁 때 헤어진 부모형제를 만나기 위해 대남 공작원을 자원해 군사분계선을 넘은 죄밖에 없었다. 그것도 1954년 남쪽에 오자마자 자수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풀려난, ‘오래전’ 일이었다. 68년 중앙정보부도 ‘요시찰 대상에서 해제됐다’고 통보해온 터였다.
그 뒤로 함씨는 30여년을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왔다. 결혼해 아들도 둘 낳았고, 단란한 보금자리도 꾸렸다. 물론 그에게 사회는 차가웠다. 번듯한 직장에 취업할 수 없어, 늘 가난에 허덕이다 이혼의 아픔도 겪어야 했다. 그러나 함씨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폐품팔이와 연탄 배달, 분식점, 외판원 등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러나 고문은 함씨의 생활을 송두리째 망가뜨렸다. 검사와 판사에게 울면서 “고문당했다”고 매달렸지만 믿어주지 않았고, 결국 84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수사기관에서의 자백과, 80년 전향한 남파간첩 홍씨의 “개성의 우순학이라는 여인의 남편이 남파간첩이고, 함씨가 그 남편일 가능성이 크다”는 진술이 유일한 증거였다. 98년 특별가석방으로 풀려나기까지 함씨는 16년 동안 ‘억울함’만을 곱씹어야 했다.
이듬해 민변 변호사들이 이근안씨를 불법감금·위증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발하면서, 함씨에게도 한 줄기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이씨가 검찰에서 범죄사실을 모두 인정한 것이다. 83년 “이 새끼, 저 새끼!” 하며 욕설을 내뱉던 이씨는 대질신문 자리에서 그의 손을 꽉 잡으며 “죄송했습니다” 하고 용서를 구했다. 함씨도 “건강하라”며 등을 두드려줬다. 공소시효가 지나 이씨를 처벌하지는 못했지만, 검찰 수사 결과를 근거로 함씨는 재심을 청구했고, 2003년 서울고법은 “수사경찰관이 직무에 관한 죄를 저지른 것이 증명됐다”며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선고 뒤 함씨는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는 ‘희망’ 하나만으로 지금껏 버텨왔다”며 “남편 뒷바라지에 고생해온 아내와 ‘간첩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주변의 눈총을 받고, 결혼에서도 좌절하는 아픔을 겪은 자식들에게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들(표 참조)에 대한 미안함도 잊지 않았다. 함씨는 “다른 피해자들은 재심청구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데, 이제는 국가가 나서 이들의 ‘피맺힌 한’을 풀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함씨의 변호를 맡은 조용환 변호사는 “고문에 의한 조작간첩 사건은 국가권력에 의한 조직범죄”라며 “따라서 엄격한 형사소송법의 재심 사유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국가가 직접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손해배상 등 당시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민가협은 함씨와 같이 뚜렷한 물증 없이 주변의 진술이나 고문으로 인한 본인의 자백만을 근거로 유죄를 선고받은 조작간첩 사건의 피해자가 1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법살인’으로 불리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도 법원의 재심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이듬해 민변 변호사들이 이근안씨를 불법감금·위증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발하면서, 함씨에게도 한 줄기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이씨가 검찰에서 범죄사실을 모두 인정한 것이다. 83년 “이 새끼, 저 새끼!” 하며 욕설을 내뱉던 이씨는 대질신문 자리에서 그의 손을 꽉 잡으며 “죄송했습니다” 하고 용서를 구했다. 함씨도 “건강하라”며 등을 두드려줬다. 공소시효가 지나 이씨를 처벌하지는 못했지만, 검찰 수사 결과를 근거로 함씨는 재심을 청구했고, 2003년 서울고법은 “수사경찰관이 직무에 관한 죄를 저지른 것이 증명됐다”며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선고 뒤 함씨는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는 ‘희망’ 하나만으로 지금껏 버텨왔다”며 “남편 뒷바라지에 고생해온 아내와 ‘간첩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주변의 눈총을 받고, 결혼에서도 좌절하는 아픔을 겪은 자식들에게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들(표 참조)에 대한 미안함도 잊지 않았다. 함씨는 “다른 피해자들은 재심청구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데, 이제는 국가가 나서 이들의 ‘피맺힌 한’을 풀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함씨의 변호를 맡은 조용환 변호사는 “고문에 의한 조작간첩 사건은 국가권력에 의한 조직범죄”라며 “따라서 엄격한 형사소송법의 재심 사유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국가가 직접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손해배상 등 당시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민가협은 함씨와 같이 뚜렷한 물증 없이 주변의 진술이나 고문으로 인한 본인의 자백만을 근거로 유죄를 선고받은 조작간첩 사건의 피해자가 1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법살인’으로 불리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도 법원의 재심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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