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한미FTA 저지'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과 도로를 가득 메운채 ”비준 무효, MB 퇴진”을 외치고 있다.
시민 1만여명 세종로 사거리 한동안 점거…여고생 등 수십명 연행
종로경찰서장, 시위대 안에 들어왔다 계급장 뜯기는 봉변…늦은밤 자진해산
26일 오후 촛불집회에 참석한 손학규 민주당 대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백기완 선생 등이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 앉아 있다.
“명박 퇴진, 비준 무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을 점거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통과된 지난 22일 이후 첫 주말을 맞은 26일 저녁,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 무효를 주장하는 1만여명(주최쪽 추산, 경찰추산 2천여명)의 시민들이 추운 날씨 속에 촛불을 들었다. 집회를 원천봉쇄한 경찰은 고등학생 2명을 포함한 집회 참가자 수십명을 연행했고, 경찰 방침에 화가 난 시민들이 종로경찰서장을 폭행하는 등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와 민주당·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야5당은 오후 5시30분부터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정당연설회와 함께 촛불집회를 시작할 계획이었지만, 광장이 99개 중대 1만여명의 병력을 투입한 경찰에 의해 봉쇄돼 저녁 6시40분께부터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집회를 시작했다. 집회에서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국회에서 한나라당의 날치기 통과를 막지 못해 깊이 사죄한다”며 “하지만 모두 힘을 합쳐 에프티에이를 막을 수 있도록 열심히 싸우겠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25일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고 권지현 한신대 학생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며 “의원직 박탈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운 김선동 의원처럼 에프티에이 폐기를 위해 열심히 싸우겠다“고 말했다.
고등학생부터 노인까지 다양
집회 참가자들은 오후 7시30분께부터 행진을 시작해, 서울 시청 앞 광장과 종로1가를 지나 광화문 광장으로 저녁 8시30분까지 행진을 이어갔다. 행진 과정에서 경찰과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집회 참가자들은 광장 일부와 세종대로 사거리를 1시간30분 남짓 점거하고 ‘에프티에이 비준 철회’와 ‘한나라당 해체’ 등을 외쳤다.
주말을 맞은 집회에는 남녀노소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참가했다. 고등학생부터 백발의 노인, 나들이 복장의 직장인 등 다양한 참가자들이 눈에 띄었다. 대안학교인 ’꽃피는 학교’ 이아무개(17·여) 학생은 “에프티에이가 비준되면 우리의 미래가 엉망이 될 것”이라며 "내 미래에 대한 책임을 어른들에게 미루고 싶지 않아 이 곳에 왔다“고 말했다.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대신해 참가했다는 대학생 김동률(26)씨는 “에프티에이 내용 자체에 대해서도 화가 나지만 한나라당이 비공개로 날치기 처리한 것이 더 화가 난다”며 “의료·공공 정책에 악영향을 미칠 에프티에이가 폐기될 때까지 집회에 참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충북 보은에서 올라와 부부가 함께 참가한 고아무개(50)씨는 “농촌에서는 어르신들이 에프티에이 때문에 시름이 가득한데, 서울에서는 이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에프티에이에 반대하는 민심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화문광장 앞 세종로 사거리를 행진하는 시민들.
밤 10시께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정리집회에서 민주당 정동영 최고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은 광화문네거리에 모인 2만명의 시민들이 ‘비준무효 명박 퇴진’을 외치는 것을 똑똑히 듣길 바란다”며 “대한민국 주권자인 국민이 요구하는 대로 29일 예정된 비준 서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도 “내년 총·대선에서 이겨서 에프티에이를 막겠다는 것은 지금 할 소리가 아니다”며 “29일 이명박 대통령이 비준 서명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로경찰서장, 시위대 안에 들어왔다가 봉변
참가자 중 일부는 밤 10시께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마친 뒤에도 종로4가와 명동성당까지 행진하며 구호를 외친뒤 밤11시께 해산했다. 이날 집회에서 경찰은 참가자를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대전의 한 고등학생 이아무개(17)양을 연행하는 등 19명을 연행했다.
광화문광장 앞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한미FTA 무효”를 외치고 있다.
한편, 밤 9시30분께 박건찬 종로경찰서장이 정동영 의원 등과 집회 해산을 놓고 논의하기 위해 시위대 안으로 들어가던 중, 시위대와 충돌해 안경이 벗겨지고 계급장이 뜯겨지는 등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박 서장은 집회가 끝난 뒤 기자들에게 “법 집행을 방해하고 경찰을 폭행한 시위대를 찾아 처벌하겠다”고 말했다. 박태우 정환봉 기자 eh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