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평준화 폐지 주장…“청와대쪽, 대학도 평준화하려는 듯”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18일 정부·여당과 갈등을 빚고 있는 2008 학년도 서울대 입시안과 관련해 ‘될 수 있는 대로 좋은 학생을 데려다 키우겠다’며 “결코 후퇴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정 총장은 또 고교평준화 정책에 대해 “재고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 전반을 비판했다.
정 서울대 총장은 이날 제주도 신라호텔에서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최고경영자대학 강연 뒤, ‘소신과 철학을 계속 유지하고 관철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서울대 입시는 ‘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오랫동안 고민한 결과를 정리한 것이 통합형 논술고사 등의 입시안이기 때문에 결코 후퇴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내신 1등급은 2만4천명 정도인데, 이들을 서울대·연대·고대·성대 등으로 컴퓨터로 배정하면 몰라도 변별하기는 어렵다”며 “어릴 때부터 독특한 생각을 갖고 글로 정리하는 능력을 기르지 않고는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워, 논술시험을 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통합교과형 논술에 대해 “국어·영어·사회·수학을 따로 보는 식이 아니라 고등학교 과정을 잘 이수하고 고교과정의 책을 다 읽었으면 그것을 바탕으로 종합적으로 문제를 내고 채점하면서 분별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대통령께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지 잘 모르겠지만, 언론이나 보좌진을 통해 나타난 것을 보면 한마디로 고교평준화와 비슷하게 대학도 평준화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하는 것은 원자재 질을 따지지 말고 좋은 제품을 만들자는 것인데, 원자재가 좋지 않으면 물건 만드는 기술이 뛰어나도 좋은 물건을 만들기 어렵다”며 “1천분의 1이 되든, 될 수 있는 대로 좋은 학생을 데려다가 잘 키우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노 대통령은 8일 열린 제2회 대학혁신포럼에서 대학입시와 관련해 대학은 좋은 인재만을 뽑는 데 매달리지 말고 좋은 인재를 길러내는 데 더욱 힘써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한 바 있다.
그는 국외 조기유학과 관련해 “중·고교에서 솎아내는 과정을 거치면 국외로 덜 나갈 것”이라며 “고교평준화를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간섭은 실패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나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영선 교육부 기획홍보관리관은 “언론보도 내용만 보고 대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고교평준화 폐지를 주장한 데 대해서는 “고교 평준화는 참여정부의 흔들릴 수 없는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교육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어떤 학생이 우수한지에 대한 철학이 다른 것 같다”며 “같은 학업 성적이라면 시골에서 수학한 학생의 잠재력이 더 있다는 게 새 입시안의 기본 철학인데, 정 총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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