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신화 박태준 별세
포철신화 ‘명암’
포철신화 ‘명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고 이병철 삼성 회장 등과 함께 한국 산업화를 일군 주역 중 한사람임이 분명하지만 그가 남긴 그늘도 적지 않다.
포스코의 성공은 당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은 바가 컸는데도 한 개인의 영웅담처럼 묘사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김기원 방송대 교수는 “박태준 명예회장은 재벌 총수도 아니고 해서 그렇게 나쁘게 생각한 적 없다”고 전제하면서 “포철의 성공을 너무 개인의 자질로만 돌리는 것은 지나친 영웅담”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포철은 한일회담 이후 일본의 무상차관을 전용해 건설한 것으로, 금융비용이 거의 들지 않은데다 박정희·김종필 등 당시 최고위층의 적극적인 지원과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함께 어우러져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포스코가 독립적인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하지 못해 정치권의 외풍이 잦았던 점, 24년 동안 회사를 경영하면서 쌓은 이른바 ‘티제이 사단’을 통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포스코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점 등은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포철은 민영화 이후에도 지배구조가 독립적이지 못해 여전히 정부 입김이 강하고 또 박 명예회장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지적했다.
‘무노조 경영’ 철학도 그가 남긴 그늘이다. 조셉 인너스와 애비 드레스가 1992년에 쓴 <세계는 믿지 않았다- 포항제철이 길을 밝히다>를 보면, 당시 박득표 포항제철 부사장은 “회장님(박태준)은 오랫동안 노조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회사와 달리 우리는 노사 간의 마찰이 거의 없었는데, 그건 ‘한가족’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적고 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직후 포철에도 조합원 2만명을 거느린 민주노조가 설립됐으나 회사 쪽의 회유와 압력으로 결국 서너달 만에 노조가 와해된 바 있다.
박현 김경락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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