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시민연대 추대 ‘나눔반장 1호’ 이정주씨
이문동 골목누비며 독거노인·이주여성 등 도와
이문동 골목누비며 독거노인·이주여성 등 도와
임진년 새해를 맞는 제야의 종로 보신각. 타종을 위해 모인 시민대표 10인 중 한 사람인 이정주(49)씨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의 소문난 복덕방 아줌마이자, 이 지역에서만 45년을 지낸 ‘나눔반장’이다. 동네 마당발인 이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골목골목을 누비며 독거노인과 이주여성 등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구호의 손길을 내민다. 서울시는 이씨를 어려운 이웃에게 꿈과 희망을 나눈 서울의 대표 인사로 꼽았다.
타종 행사 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씨에게 연신 ‘이상한 사람’이라며 농을 던졌다. “사람들이 으레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기 싫어하는데, 오히려 당당한 모습을 좋게 보아주신 것 같다”고 이씨는 해석했다. 그 자신이 한부모 가정에 차상위 수급자인 이씨는 “어려운 사람이 다른 이의 어려운 처지를 더 잘 이해하고 나눈다”고 강조했다.
동대문지역 시민단체인 푸른시민연대는 2010년 말 이씨를 ‘1호 나눔반장’으로 추대했다. 활달한 성격에 주변의 어려움에 눈이 밝은 이씨에게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이씨는 전보다 더 의욕적으로 동네의 어려운 이웃을 찾아다녔다. 자발적으로 이웃을 돕는 2호, 3호 나눔반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씨와 ‘언니, 동생’ 하는 단골 국수집 주인은 구청을 찾아 배를 곯는 이웃을 소개해달라며 도움을 자처했다. 매주 반찬을 지어 이웃과 나누던 인근 상인회 회원들도, 동네에서 자주 마주쳤던 케이블티비 설치 기사도 모두 나눔반장을 자임했다. 희망온돌프로젝트를 통해 전해진 나눔반장 아이디어는 노원의 마들주민회, 용산의 용산연대 같은 단체가 따라 배우게 됐다. 푸른시민연대는 동대문구에서 140명의 나눔반장을 육성하는 게 목표다.
문종석 푸른시민연대 대표는 “우리의 고민은 새로운 (구호) 대상을 외면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마음은 있는데 명분이 없는 분들, 그런 분들을 찾아서 이들과 연결할 수 있다면 확실히 달라질 수 있다”며 “그야말로 자생적인 나눔이 지역사회에서 세포처럼 확산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푸른시민연대는 1994년 동대문 주민문화센터란 이름의 어머니 한글학교로 시작해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여성 등으로 연대의 대상을 확장, 최근엔 마을공동체 복원 사업과 다문화어린이도서관 건립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희망온돌을 하면서 공무원들과의 접촉도 늘었다. 그는 “공무원들이 깜짝깜짝 놀란다. 지역에 다녀보니 민간에서 이렇게 하는지 자기들도 몰랐다고 한다”며 “그나마 지역에 있는 것들을 자신의 성과로 포장하려는 경향이 있더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형식적, 물질적 포상이 아닌 방식으로 자발적인 시민들의 행위를 지원하는 것. 문 대표가 꼽는, 한 달을 넘긴 ‘민관협치’ 희망온돌이 풀어야 할 숙제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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