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어서 신혼집으로 가고 싶어요”

등록 2005-07-20 20:13수정 2005-07-20 20:21

[이사람] ‘파룬궁 수련’ 이유로 구금됐던 중국동포 고성녀씨 귀국
한국남자와 결혼했지만
신혼 단꿈 꿀 새도 없이
출국금지되고 1년간 갇혀
20만명 참여 석방운동에
마침내 남편 품으로

20일 오후 인천공항 입국심사대 앞에 선 고성녀(30)씨의 마음이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여권 사진과 자신의 얼굴을 번갈아 살피는 입국심사원의 ‘평범한’ 눈길마저 가슴을 찌르는 듯 했다. 2년 만에 나온 여권이었다. 저기 몇 발자국 앞에 있는 입국장만 나서면 남편이 있다. 채 1분도 안 되는 심사시간이 노동수용소에 수감돼 있던 1년만큼이나 길게 느껴졌다. 심사원이 빙긋 미소를 지으며 여권을 건넸다. 남편이 사준 노란색 블라우스의 옷깃을 여미는 손이 가볍게 떨렸다.

입국장 밖에는 고씨의 남편 곽병호(39)씨가 초조한 마음으로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가 탄 비행기가 1시간 가까이 연착되자 곽씨의 바짝 타 들어간 입술은 담배 한 개비를 간절히 원했다. 드디어 눈에 익은 노란색 블라우스를 입은 고씨가 입국장을 나섰다. 부부의 눈시울은 금새 붉어졌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긴 포옹이 이어졌다.

충남 천안에 사는 곽씨는 한국의 여느 농촌 남자들이 그러하듯 ‘노총각’이었다. 그는 지난 2003년 1월 중국 헤이룽장 성 자무쓰 시로 날아가 중국동포인 고씨를 소개받았다.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곽씨의 눈에 자꾸만 고씨의 얼굴이 밟혔다. 4개월 간 편지와 전화를 주고받은 끝에 이들은 같은 해 5월 중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까지 마쳤다. 천안에는 나이 많은 손자를 받아준 귀한 며느리를 기다리는 할머니와 신혼집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고씨는 한국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중국 당국이 금지하는 ‘파룬궁(법륜공)’ 수련자였기 때문이다.

고씨의 여권 발급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니던 곽씨에게 고씨가 중국 공안당국에 잡혀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 5월이었다. 고씨는 흑룡강성 가목사시 노동교양소에 1년간 수감됐다. 여권 발급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신혼의 단꿈도 영원히 유예되는 듯 했다. 며느리를 기다리는 부모님에겐 “서류가 잘못돼 귀국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불효도 불효지만 아내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졌다.

그러나 딱한 사정이 알려지면서 여기저기 도움의 손길이 이들 부부를 어루만졌다. 지난해 8월 ‘고성녀씨 구명대책위원회’가 생기더니 올 3월에는 ‘한국인 처 고성녀씨 석방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이 꾸려졌다. 중국대사관을 통해 후진타오 중국주석에게 고씨의 석방을 촉구하는 서한이 전달됐다. 고씨의 석방을 요구하는 서명에는 한국인 20여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 그리고 지난달 고씨의 손에 드디어 여권이 쥐어졌다.

“구명활동을 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년여 간 마음을 옥죄던 긴장이 한 순간에 풀어진 듯 고씨는 몹시 피곤해하면서도 서툰 한국말로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고씨는 “어서 신혼집으로 가고 싶다”며 ‘신혼 아닌 신혼’에 접어든 새색시의 웃음즐 지어보였다.

고씨는 구금 기간 동안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쓰지 않아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남편은 고문을 견뎌냈을 아내의 작은 몸이 애처롭다. “친척들에게 인사도 드리고 남들처럼 하나 둘씩 살림 장만해 가는 재미로 살고 싶습니다. 그 전에 얼른 집으로 가서 아내가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해주고 싶습니다.” 몇 번 만나지는 못했지만 부부의 연을 맺은 지난 2년간 아내에 대한 곽씨의 사랑은 한 없이 커져 있었다.


오승훈 인턴기자, 사진 양예나 인턴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