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억짜리 건물 증여’ 세금 안내려 홍콩에 유령회사
회계사 동원해 회삿돈 300억 빼돌려 돈세탁 ‘덜미’
회계사 동원해 회삿돈 300억 빼돌려 돈세탁 ‘덜미’
서울 강남에서 2000억원대에 이르는 건물 3채를 자산으로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ㅎ통상의 이아무개(64) 사장은 2008년 5월 회사 건물을 아들딸에게 물려주려고 마음먹었다. 증여할 재산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지상 10층에 연건평 4488㎡(1357평) 규모인 시가 1100억원짜리 대형 건물로, 그가 ‘정직하게’ 재산을 물려준다면 예상되는 증여세는 400억원 이상이었다. 그러나 세금이 아까웠던 그는 증여세를 한 푼도 내지 않고 1000억원대 건물을 자식들에게 넘겨줄 방법을 찾아 나섰다.
이 사장은 부동산 개발업체 대표 유아무개(32·여)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유씨는 공인회계사 2명과 머리를 맞대고 ‘증여세 0’에 1100억원짜리 건물을 넘겨줄 ‘상증세(상속증여세) 플랜’의 실행에 들어갔다. 이들은 궁리 끝에 주식 양도 과정에 세금을 매기지 않는 홍콩을 작전의 주무대로 삼았다. 홍콩에 세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중국 철강회사에 투자했다가 청산금 명목으로 투자금을 돌려받은 것처럼 꾸민 뒤 이 돈으로 ㅎ통상 주식을 매입하기로 했다. 이렇게 확보한 주식은 홍콩에서 이 사장의 자녀에게 넘기고, 국외투자 실패로 가치가 떨어진 ㅎ통상의 나머지 주식은 국내에서 자녀들에게 증여하기로 한 것이다. 증여세 400억원을 두려워했던 이 사장은 이 작전이 성공하면 유씨에게 80억원, 공인회계사 2명에게 1억5000만원을 주기로 약속까지 했다.
이들은 ‘완전범죄’를 꿈꾸며 치밀하게 움직였다. ㅎ통상이 홍콩법인을 통해 외국 회사에 투자하는 모양새를 띠었기 때문에 출입국 기록을 남겨놓으려고 허아무개 회계사가 1박2일 동안 홍콩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 사장은 중국 철강회사에 투자한다며 ㅎ통상 건물을 담보로 국내 시중은행에서 300억원을 대출받았고, 이 돈은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소재 페이퍼컴퍼니 여러 곳에 송금되면서 ‘세탁’됐다. 이들은 2008년 11월, 이렇게 출처를 감춘 돈 190억원을 이용해 ㅎ통상의 주식 60%를 사들였다. 일은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들의 계획은 국내 비거주자의 재산도피 의심 계좌를 들여다보던 서울세관 조사 과정에서 꼬리가 밟혔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 이흥락)는 25일, 이 사장을 회삿돈 300억원을 세금 회피용으로 빼돌린 혐의(횡령 및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로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300억원 횡령 사실이 적발된 이 사장에게는 90억원의 소득세와 7억원의 법인세 부과가 예상된다. 또 나중에 자식들에게 1100억원짜리 건물을 물려줄 때는 꼼짝없이 400억원의 증여세도 내야 한다. 검찰은 범행을 도운 공인회계사 2명을 불구속 기소했고,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잠적한 ‘탈세 플랜’의 총괄기획자 유씨의 행방을 쫓고 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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