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 변호사
변론 맡았던 박훈변호사 인터뷰
“특별검사제 도입해 의문점 전면 재수사해야”
“특별검사제 도입해 의문점 전면 재수사해야”
“특별검사제를 도입해 재판과정에서 문제제기됐던 풀리지 않은 의문들에 대해 전면 재수사를 해야 하며, 그 결과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재심을 해야 합니다.”
2007년 일어난 이른바 ‘석궁 사건’의 재판과정을 다룬 영화 <부러진 화살>이 흥행몰이를 하면서 이 사건과 재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화에서 다룬 ‘석궁 사건’ 2심 재판의 피고인 변론을 맡았던 박훈(46) 변호사(영화에선 박준 변호사)를 지난 29일 경남 창원시 상남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의 사무실 어귀 벽면은 영화 <부러진 화살> 포스터로 도배돼 있었다.
“박 판사 상처 본 사람 없어”
-영화에서 다룬 형사재판이 끝나면서 ‘석궁 사건’과 관련된 모든 소송이 끝났나?
“그렇지 않다. 2008년 10월2일 대한민국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잘못된 재판 때문에 피해를 당했다며 1억5000만원을 요구했다. 2심까지 갔는데 2010년 3월18일 종결됐다. 옷가지에 대한 증거보전 신청은 받아들여졌지만, 혈흔 감정 신청은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무런 의미 없이 끝났다. ‘석궁 사건’과 관련해서는 이것으로 모두 끝났지만, 김명호 선생님(영화 속 김경호 교수)은 계속 싸우고 있다.”
-영화를 보면 쟁점이 몇 가지로 모아진다. 첫번째 쟁점으로 교수임용 탈락 이유에 대해 김 교수는 학교의 잘못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괘씸죄 때문이라고 하는 반면, 법원은 교수 자질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나는 형사사건 변론을 맡았는데, 그것은 민사사건이기 때문에 나와 관련이 없다. 어쨌든 법원의 자료를 보면 교수로서 자질과 품성이 없기 때문에 재임용 탈락시킨 것이라고 나온다. 사립대 재임용 탈락된 분들의 사건을 많이 맡아봤는데, 대부분 대학들이 객관적 지표가 아닌 주관적인 것, 그러니까 자질·인화단결 그런 것으로 평가해 재임용 여부를 결정한다. 객관적 지표에서는 점수가 비슷비슷한데, 주관적 지표에서 크게 차이를 내서 탈락시킨다. 결국 주관적 지표를 눈 밖에 난 사람을 탈락시키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재판 진행 과정과 절차의 문제점, 대표적으로 혈흔 감정 문제가 중요한 쟁점 아닌가?
“맞다. 피해자 옷가지라고 수거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박홍우 판사(‘석궁 사건’의 피해자)의 옷인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래서 재판 과정에서 박 판사의 옷을 처음으로 입수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서울 송파경찰서 어느 팀에서 수거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누가 수거해서 어디에 전달했는지 물었는데, 답변이 ‘모른다’, 딱 한줄이었다. 그 옷이 피해자 옷인지 아닌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피해자 옷가지라고 하는 것이 박홍우 판사의 것이 맞는지 확인하려면, 박 판사 몸의 상처와 옷의 뚫어진 부분을 맞춰봐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더 웃기는 것은 박 판사의 상처를 본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수사기록에도 상처가 나오지 않고, 진단서에만 나온다. 보통 상해사건에서는 상처를 사진으로 찍어 남기는데, 이 사건에서는 수사기록에 복부의 상처를 보여주는 사진이 없다. 상처를 덮어놓은 거즈 사진만 있다. 굉장히 궁금하다. 어떻게 된 것인지는 증인이 나와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적절하지 않다며 끝내버렸다. 결국 그 옷에 묻은 피가 박 판사의 피가 맞는지 아닌지도 모르게 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옷에 묻은 혈흔 감정 결과 동일 남성의 피라고 나왔다. 그 옷에 묻어있는 모든 피는 어떤 한 사람의 피라는 것이다. 그럼 그 한 사람이 누구인지 밝히려면 피해자의 피와 대조해야 하기 때문에 박 판사의 혈흔 감정을 요구했는데 역시 적절하지 않다고 해서 기각됐다.”
“부러진 화살은 어디에도 없었다”
-또다른 쟁점은 무엇이 있나?
“석궁 실험을 한 송파경찰서 관계자도 여러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는 법원에서 진술하기를 ‘왜 이런 상처가 났는지 의구심을 갖고 실험을 했다’고 하더라. 진짜 석궁에 맞았다면 화살이 배에 깊숙히 박히거나 배를 뚫고 지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판부가 참여하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석궁 실험을 하자고 신청했는데 또 기각됐다.
재판과정에서 박홍우 판사는 계속해서 진술을 번복했다. ‘내가 어떤 경찰관에게 듣기로는, 어떤 의사에게 듣기로는’ 하면서 진술을 번복했다. 그래서 그의 진술에 나오는 사람들을 재판에 증인으로 불러들여 물었다. 박 판사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냐고. 그런데 모두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박홍우 판사를 증인 신청을 했는데, 재판장은 ‘1심에서 다 들어본 것 아니냐’며 기각했다.
-부러진 화살은 무엇이 문제인가?
“검찰에게 ‘수사를 했으니 밝혀달라’고 요구한 것이 있다. 그것을 석명 요구라고 한다. 박홍우 판사와 아파트 경비원이 일관되게 진술한 범행도구인 화살 하나는 끝이 뭉툭하고 중간에 꺾여 있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 부러진 화살은 어디갔냐. 김 선생이 허리에 차고 있었던 화살 2개와 부러진 화살 1개를 경비원이 챙겨서 화단에 놔두고, 경찰이 오니까 가져가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수거한 경찰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경찰은 멀쩡한 화살만 있었다고 한다. 증거 수집 장면을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이 전혀 없다. 그런데 검찰은 ‘모른다’고 했다.”
-다른 의문점은 없나?
“설사 화살을 맞아서 배에 상처가 났다면 피가 배어나와 옷에 순차적으로 묻어야 하는데, 왜 속옷과 겉옷에는 묻었는데 그 사이에 있는 와이셔츠에는 피가 묻지 않았나. 그것을 밝혀달라 했는데 그 역시 검찰은 ‘모른다’고 했다.
의문투성이였다.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것을 밝히려 무던히 노력했다. 그런데 판사가 다 기각했다. 판사가 나한테 그랬다. ‘모른다잖아요. 검사가 모른다잖아요.’
내가 마지막 공판 때는 재판장에게 물병을 던지려 했다. 공판 전에 마누라한테 ‘나 변호사 그만 하련다. 나 구속당하련다. 애 잘 키우고 있어라’ 했다. 마누라가 ‘알았어. 수고해. 애 잘 키우고 있을테니 살다 와’ 그러더라. 우리 마누라 정말 쿨(Cool)해. 그런데 방청석에서 재판장을 향해 계란이 날아오더라. 내가 물병까지 던지면 폭동이 일어날 것 같더라. 그래서 참았다.”
-법원에서는 김명호 교수와 박 변호사가 구속기간 만료로 인한 석방을 목적으로 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고 하는데?
“그것은 법원의 생각일 뿐이다. 여러 의혹을 밝히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것이 구속기간 만료와 무슨 상관이 있나. 그런데 재판장은 마치 구속기간 만료가 재판기간 만료인 것처럼 재판을 서둘렀다. 구속기간 만료와 재판기간 만료는 아무 관계가 없다.”
김교수 원래 승소? “쇼다 쇼”
-‘석궁 사건’의 원인이 됐던 교수지위 확인 소송 2심 재판에 참여했던 한 판사가 최근 법원 내부망에 써올린 글에서, 당시 판사 3명의 합의 결과 김명호 교수의 승소였으나 다른 이유로 결론을 뒤집게 됐다고 밝혔다. 어떻게 생각하나?
“쇼다 쇼. 지금와서 시끄러워지니까 면피해보려는 것이겠지. 자기들은 승소를 시켜주려 했는데 재판 태도가 불량해서 승소시킬 것을 패소시켰다는 말밖에 안된다. 그것은 보복이다. 재판부를 무시한 것에 대한 보복.”
-그렇다면 ‘석궁 사건’과 그 재판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 사건은 명예훼손죄와 병합돼 있는 사건이다. 김명호 선생이 대법원 앞에서 판사들을 공격하는 1인 시위를 지속적으로 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고 생각한다. 사건을 크게 키워서 이 사람을 감옥에 가둬놓겠다는 사법부의 보복이다. 항소심 최후변론에서 내가 이 말을 명확하게 했다. 이 사건의 본질은 그 행위에 대한 사법부의 보복이다. 이 사람이 석궁을 들고 간 것을 기화로, 대법원과 여러 판사들을 비판한 것에 대해 보복을 한 것이다. 사법부의 오만과 독선적 태도가 이 개별 사건을 통해 전면화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특별검사제를 도입해 재판과정에서 문제제기한 풀리지 않은 의문에 대해 전면 재수사를 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재심을 해야 한다.”
-영화 <부러진 화살>을 통해 숨겨진 실체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할까?
“권력자들이 움직여야 하고, 정치권이 특별검사제를 도입해야 하는 문제이다. 국민들의 요구가 들불처럼 일어나, 국민이 법원을 통제할 장치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등의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 이 영화를 통해 국민들이 사법부 개혁을 목청껏 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4·11총선 무소속으로 출마
-영화 외의 개인적 이야기를 해보자. 2004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창원으로 올 때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다. 가족을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고.
“그때는 아직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이었기 때문에 부인만 설득하면 됐다. 노동자 밀집지역에 가서 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살고 싶다고 마누라에게 말했다. 그랬더니 아내가 그냥 받아들이더라. 서울에서 직장 다니고 있었는데 그것도 접고. 쿨해. 우리 마누라.”
-박 변호사는 4·11총선 경남 창원을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그런데 왜 다른 예비후보들처럼 거리에 나가 선거운동을 하지 않고, 이렇게 사무실에 앉아 있나?
“그건 구태의연한 선거운동이다. 대신 나는 사이버 선거운동 체계를 구축하느라 시간이 걸렸고. 그래도 다음달부터는 나도 본격적으로 구태의연한 선거운동, 전통적인 선거운동에 들어갈 생각이다. 아침에 나가 인사하고, 모임 찾아가서 인사하고.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것만 선거운동이라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사이버 선거운동이라면 무엇을 말하나?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이런 것들이다.”
-다 개설했다는 것인가?
“내 입장에서 개설보다는 안착이 됐다고 말할 수 있다. 스마트폰을 산 지 한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페이스북은 친구가 1500명을 넘었고, 트위터도 연지 얼마 안 됐는데 팔로워가 1만명을 육박하고, 블로그는 매일 방문자 수가 7000~8000명 정도 된다. 본격적으로 한 게 지난 15일부터였는데. 안착이 잘 됐다.”
-결국 영화 덕분 아닌가?
“영화 영향이 상당하죠. 총선 나오려고 영화 찍었냐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이야기 들으면 돌아버리겠다. 영화와 선거는 아무 관계가 없다. 하지만 저에게는 시기적으로 딱 맞아떨어지니까 나의 인지도를 올리는 데는 큰 도움을 받았다.”
-솔직히 영화 <부러진 화살> 관련 언론보도가 박 변호사 개인의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 판단되면 기사 안 쓰면 되는 거야. 그냥 쿨하게.”
창원/글·사진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맞다. 피해자 옷가지라고 수거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박홍우 판사(‘석궁 사건’의 피해자)의 옷인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래서 재판 과정에서 박 판사의 옷을 처음으로 입수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서울 송파경찰서 어느 팀에서 수거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누가 수거해서 어디에 전달했는지 물었는데, 답변이 ‘모른다’, 딱 한줄이었다. 그 옷이 피해자 옷인지 아닌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피해자 옷가지라고 하는 것이 박홍우 판사의 것이 맞는지 확인하려면, 박 판사 몸의 상처와 옷의 뚫어진 부분을 맞춰봐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더 웃기는 것은 박 판사의 상처를 본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수사기록에도 상처가 나오지 않고, 진단서에만 나온다. 보통 상해사건에서는 상처를 사진으로 찍어 남기는데, 이 사건에서는 수사기록에 복부의 상처를 보여주는 사진이 없다. 상처를 덮어놓은 거즈 사진만 있다. 굉장히 궁금하다. 어떻게 된 것인지는 증인이 나와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적절하지 않다며 끝내버렸다. 결국 그 옷에 묻은 피가 박 판사의 피가 맞는지 아닌지도 모르게 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옷에 묻은 혈흔 감정 결과 동일 남성의 피라고 나왔다. 그 옷에 묻어있는 모든 피는 어떤 한 사람의 피라는 것이다. 그럼 그 한 사람이 누구인지 밝히려면 피해자의 피와 대조해야 하기 때문에 박 판사의 혈흔 감정을 요구했는데 역시 적절하지 않다고 해서 기각됐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한 장면.
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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