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경 청년유니온 위원장이 한겨레 티브이 디어(Dear) 청춘에 출연해 강연을 하고 있다.
[디어청춘 11회] 김영경 청년유니온 위원장
권리 주장하니 30분 배달제 폐지되고 알바 주휴수당 받아
“아픔 꺼내 놓으면 손 잡아줄 친구 있다는 걸 잊지마세요”
권리 주장하니 30분 배달제 폐지되고 알바 주휴수당 받아
“아픔 꺼내 놓으면 손 잡아줄 친구 있다는 걸 잊지마세요”
“여러분께 들려드릴 이야기는 저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제 친구들의 이야기이기도 한 우리들의 이야깁니다. 누구나 그렇지만,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건 어렵잖아요. 오늘은 우울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던지는 악마적인(?) 존재가 되겠네요.” (웃음)
김영경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대한민국 최초로 세대별 노동조합 건설을 주도한 이다. 그는 요즘 청년유니온 활동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더 주목을 받고 있다.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출마설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31일 <한겨레TV> 스튜디오에서 열린 ‘디어(dear)청춘’ 강연 들머리에서 비례대표 출마설과 관련해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정치권은 그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청년 문제에 더 관심이 깊어 보였다.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희망은 현실을 직시했을 때, 나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울한 이야기를 많이 하겠습니다”라며 청년의 문제, 청년유니온이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에 대해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때론 청년유니온이 한 일을 자랑하면서, 특유의 자신감에 전염돼 스튜디오에 웃음꽃이 피었다.
# 미안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만약 등록금이 없으면 편의점에서 시급 4,320원씩 받고 알바를 하면 돼요. 편의점에서 1년 동안 숨만 쉬고 바코드를 찍으면 1년 학비가 생겨요. 이렇게 1년 휴학하고 1년 공부하면 8년 만에 졸업할 수 있어요~’ (개그콘서트 ’사마귀유치원‘ 4회 중에서)
미디어에서 그리는 청년들의 모습은 현실과 다르지 않다. 김 위원장은 빚을 떠안고 사는 청년들의 현실을 직시했다. 누구나 잘 알듯 대학 졸업장을 받으려면 등록금이 어마어마하게 든다. 등록금 때문에 학자금 대출을 받고, ‘최저임금 아르바이트’에 뛰어든다. 졸업 뒤에는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신세, 청년실업이 기다리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일은 상상하기도 벅차다. 이처럼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현실은 암담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자리를 구할 때, 청년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 하죠.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리 사회에서 바뀌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차이가 2배 가까이 됩니다. 학력별로 임금 수준 차이도 심각합니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청년들에게 무작정 눈높이를 낮추라고 하는 것은 청년실업 문제를 청년들 개개인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청년실업률은 9%다. 구직 단념자·취업준비자·군인 등을 포함한 청년층의 체감실업률은 24%에 달한 것으로 파악된다. 김 위원장은 청년실업의 문제는 일자리의 양보다 질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1993년까지만 해도 대기업이 13% 정도의 청년 고용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2009년에는 대기업의 일자리가 6%대로 절반까지 떨어졌어요. 대기업은 신규 채용을 하지 않고, 공공기관은 계속해서 정리해고를 해나가고 있으니 청년실업 문제가 풀리지 않죠.”
어쩌면, 청년들에게 사랑은 사치다. 결혼은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 같다.
“결혼을 하려면 또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합니다. 빚을 안 내고 결혼하는 사람이 없어요. 언제까지 빚쟁이로 살아야 할까요? 현실은 정말 시궁창이죠.”
#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 질러라!”
이렇게 머리 아픈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는 청년들이 모여 2010년 3월, 청년유니온이란 청년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만 15세의 청년부터 39세의 청년까지 가입할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활동부터 노동상담, 노동법 세미나에 이르기까지 400여 명의 조합원이 팔을 걷어붙였다. 가장 먼저, 최저임금 실태조사에 나섰다.
“2010년, 전국의 편의점 500여 곳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아르바이트생을 만나 시급을 물어봤습니다. 그 결과, 66%가 최저임금을 못 받고 있었죠. 지방으로 가면 더 심각합니다. 80%가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었죠. 2010년 최저임금이 4110원이었는데, 전라도 지역에서는 2000원대의 시급을 받고 일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충격적인 결과는 두 달 가까이 언론에 회자되었고, 그 덕분인지 고용노동부가 2010년 9월부터 최저임금 모니터링 사업을 실시했습니다. 최저임금 지급에 야박한 3대 업종인 편의점, 주유소, PC방 등 2500여 곳을 적발했죠.”
# 30분 피자 배달제 폐지한 해시태그의 힘
2010년 12월, 피자배달원으로 일하던 대학생이 오토바이 사고로 숨진 사건이 한겨레(12월 23일치)를 통해 보도됐다. 당시, 김 위원장은 “청년들의 목숨을 담보로 이익을 챙기려는 업체와 이에 대한 대책 없이 모르쇠로 일관한 고용부에 책임이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거침없는 반격으로 ‘피자업체의 30분 배달제’를 폐지했다.
“아직도 도미노 피자의 전화번호 뒷자리가 3082입니다. 30분 내에 빨리 배달한다는 뜻이죠. 30분 내에 배달을 하는 게 아니라, 피자를 만들어서 배달까지 30분 안에 마쳐야 한답니다. 배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속도 경쟁을 할 수밖에 없어요. 도미노 피자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데, 미국에서도 30분 배달제가 많은 문제를 일으켜서 90년대에 폐지했습니다.”
30분 배달제를 폐지하기 위해 400여 명의 조합원이 아이디어를 모았다. 한국에서 최초로 트위터 시위를 했다. 온라인에서는 멘션창 맨 앞에 ‘#노(NO)30 서비스’라는 해시태그를 붙였다. 피자 업체의 본사 앞에서 스크린을 펼치고,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오프라인에서는 그곳을 지나가는 시민들이 함께했다.
“어느 시민께서 ‘저희는 빠른 피자보다 안전한 피자가 더 맛있습니다’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려주셨습니다. 5000건이 넘는 알티(RT)와 참여가 이뤄졌죠. 트위터 시위 2주 만에 도미노 피자를 비롯해 비슷한 피자 업체에도 30분 배달제를 폐지했어요.”
# 커피빈에 알바 주휴수당 5억원 받아 낸 청년유니온
국내 유명 커피전문점들이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줘야 할 ‘주휴수당’(휴일수당 개념)의 임금을 체납했다. 이렇게 밀린 주휴수당을 지급하게 한 것도 청년유니온의 힘이 컸다.
“우리가 받고 있는 임금 구성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알고 계세요? 전체 임금에서 최저임금이 83%이고, 주휴수당은 17%가 차지해요. 대부분의 파트타이머들은 17%의 주휴수당을 떼인 채, 83%만 받게 되죠. 커피전문점들이 제대로 주휴수당을 지급하는지 일일이 매장에 전화해서 물었죠. 커피 전문점들이 ‘주휴수당 같은 것은 없어요’라고 하면서 나온 결과, 충격적입니다. 국내 유명 커피전문점의 82.1%가 주휴수당을 주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대기업이 운영하는데, 그런 법을 몰랐다는 이야기만 했죠. 이런 사실을 기자회견을 통해 알렸습니다. 고용노동부가 실태 조사에 나섰고, 커피빈코리아는 전국의 아르바이트생 3000여명에게 밀린 5억원 가량의 주휴수당을 지급했습니다. 저희 참 잘했죠?” (웃음)
# 나만 겪는 일?…희망을 일구는 일 어렵지 않아
청년유니온에서 활동하는 조합원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어떤 명망가도 저명인사도 없다.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수많은 아르바이트 이력과 비정규직 경험을 공유한 청년들이다. 오직 청년들의 힘으로 희망을 일궈낸 동력은 무엇일까?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많은 분이 똑같은 반응을 보여주세요. ‘그런 일은 저만 겪는 줄 알았어요’라고. (웃음) 내가 겪는 아픔을 조금만 이야기하면 우리가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나의 이야기를 하기가 어려워서 꺼내놓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몰랐다는 것이죠. 이야기를 꺼내놓는 순간, 우리의 손을 잡아줄 친구들, 기성세대가 있다는 것 잊지 마세요. 희망을 일구는 일은 많이 어렵지 않습니다.”
연출·글 박수진 피디 jjinpd@hani.co.kr
KBS 개그콘서트 ‘사마귀 유치원’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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