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냉장고 냉매관 고장 등 핵심부품서 빠져 고액 요구
“50만원이면 제품 교환” 유도…소비자들 “판매 꼼수” 분통
“50만원이면 제품 교환” 유도…소비자들 “판매 꼼수” 분통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임아무개(32)씨는 얼마 전 김치냉장고를 열었다가 김치가 식초 맛이 날 정도로 쉬어 있는 걸 발견했다. 같이 보관한 된장과 고추장엔 곰팡이까지 피었다. 해당 업체의 수리 기사를 부르니, 기사는 냉매가스가 지나가는 관에 균열이 생겨 가스가 샜다며, 다시 충전하고 부품을 수리하는 데 80만원이 든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예 냉장고를 반품하면 감가상각비를 빼고 50만원 정도를 더 부담해 새 모델 제품으로 교환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임씨는 “불과 3년 전 160만원을 주고 산 냉장고 수리비가 80만원이라니 황당한데다, 핵심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거나, 대안을 제시한다면서 결국은 돈을 받고 제품 하나를 더 팔겠다는 것이어서 불쾌했다”고 말했다.
김치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사용하다 결함이 발생할 경우, 제조사들이 고액의 수리비를 청구하거나 해당 부품이 없다는 이유로 새 제품으로 교환하라고 유도해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영하는 ‘1372 소비자상담센터’ 누리집을 보면, 지난해 김치냉장고에 대한 불만 신고는 74건이었다. 이 가운데 제품에 하자가 생겨 고액의 수리비를 내야 하거나, 업체가 수리 대신 보상판매를 권유한다는 내용이 50여건이나 됐다. 비단 김치냉장고뿐 아니라 에어컨·텔레비전·세탁기 등 주요 가전제품도 비슷한 사례가 꾸준히 접수되고 있다.
현행 소비자분쟁 해결기준은 가전제품의 품목별로 ‘품질 보증 기간’과 ‘부품 보유 기간’을 정해두고 있다. 냉장고의 경우 컴프레서(압축기)가 핵심 부품에 해당돼 3년간 무상수리를 받을 수 있고, 나머지는 1년이다. 부품 보유 기간은 8년이다.
조윤미 녹색소비자연대 녹색시민권리센터 본부장은 “고액의 수리비가 발생하는 경우까지 소비자가 전액 부담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냉장 기능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냉매를 포함해 각 가전제품의 ‘핵심 부품’을 폭넓게 지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제조업체가 소비자분쟁 해결기준을 지키지 않아도 제재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소비자단체들은 대형 전자업체들이 이를 악용해 규정을 무시하고 신제품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구제품의 수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엘지전자는 2008년 세탁기 저가모델 3개를 동시에 단종시키고 보상장려금을 줄이는 방식 등으로 주요 가전제품의 가격을 짬짜미해 지난달 12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각각 258억원, 18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한국와이엠시에이(YMCA)전국연맹은 짬짜미로 적발된 삼성전자와 엘지전자를 대상으로 소비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