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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초졸·신불이지만…일이 너무 하고 싶습니다”

등록 2012-02-06 16:18수정 2012-02-07 10:08

‘달인’ 강상목씨가 딸을 안고 함께 찍은 사진(왼쪽)과 ‘옴파로스’ 이아무개씨가 지난 2일 취업한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 강상목씨 제공
‘달인’ 강상목씨가 딸을 안고 함께 찍은 사진(왼쪽)과 ‘옴파로스’ 이아무개씨가 지난 2일 취업한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 강상목씨 제공
“인력시장도 춥기만…일 너무 하고 싶다” 간절한 글에
생면부지 젊은이 취직시켜준 ‘온라인 훈풍’

지난달 30일 인터넷 중고차 커뮤니티 ‘보배드림’ 게시판에 ‘일이 너무 하고 싶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저의 최종학력은 국민학교 졸업이며 가족관계는 ‘혼자’(보육원 출신)입니다. 특기는 운전이고요”라고 시작하는 글이었다. “지금은 인력시장에 다니며 생활하고 있어요. 1월 한달 동안 한번 일을 했네요. 인력시장도 만만치 않은 곳입니다만, 요즘은 날이 추워서 일거리가 없구요. 설사 일거리가 있더라도, 현장에 나갈 확률이 정말 희박합니다. 경쟁률이 상당하네요.”

아이디를 ‘옴파로스’라고 붙인 그는 자신의 딱한 살림살이도 하소연했다. “월세 8만원짜리 단칸방, 난방도 안 되는 곳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밥을 세 끼 먹으며…. 나머지는 빵으로 해결하고 있네요. 신용불량자로 살아가는 게 쉽지가 않네요. 정말 염치불고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일 좀 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중고차커뮤니티 글 보고
한 회원 “남일 같지않다”며
본인 회사에 일자리 구해줘

“세상 아직 훈훈” 댓글 봇물

취업과 무관한 게시판에 올라온 뜬금없는 글이었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많은 이들이 그의 사연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의 정체에 물음표를 던지기도 했다. 옴파로스는 자신의 월세방 사진과 함께 두번째 글을 올려 답했다. 난로를 대신해 준다는 가스버너와 쓰지 않은 깨끗한 목장갑, 그리고 잔고 9만여원이 찍힌 통장이 사진에 담겼다. “많은 격려와 관심 감사하다”라는 글도 남겼다.

그의 연이은 호소에 게시판이 들썩였다. 게시판 이용자들은 “가스버너를 보고 울컥했다”, “내가 다니던 인력사무소에 일자리가 있다”, “힘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어 죄송하다”는 댓글로 그의 사연에 공감을 나타냈다. 그의 글은 3만건이 넘는 조회수, 500건이 넘는 추천을 받으며 인기 게시물로 올라갔다.

아이디 ‘달인’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10년 동안 이 게시판을 애용해온 그는 자신이 일하는 회사에 사정을 이야기했다며, 옴파로스에게 만나자고 제안했다. 달인은 지난 1일 낮 옴파로스가 면접을 보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오고 있다는 글을 게시판에 올렸다. 저녁엔 옴파로스가 자신과 같은 공장에서 일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띄웠다. 중고차 사이트에 올린 글이 취직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게시판은 한층 훈훈하게 달아올랐다.


‘달인’ 강상목(30)씨는 6일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사연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씨는 외환위기로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자 1999년 고향인 전남 목포를 떠나 지금 일하고 있는 경기도 부천으로 홀로 올라왔다. 10년 전 냉장고 등에 쓰이는 소형모터 공장에 취직해 야간대를 다니며 기술을 익혔다. “옴파로스님 글을 보고 같은 일을 전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회사가 사람을 구하는 중이기도 했고요.” 그는 옴파로스가 아직 비정규직이지만 오는 5월이면 정규직 전환도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옴파로스’ 이아무개(33)씨는 현재 강씨가 부서장으로 있는 가공설비팀에서 일하며 공장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쁘다”며 “달인님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이렇게 도와주실 줄 몰랐다”고 말했다. “14살 때 보육원을 나온 뒤 신문·우유배달로 여태 버텨왔어요. 나이가 들어선 인력시장을 다녔는데 요즘처럼 일자리 구하기 어려운 때가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나쁜 생각을 먹기도 했죠. 마지막으로 올려나 보자 했던 글이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게시판에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 감동을 표시하는 댓글이 꼬리를 물고 있다. 아이디 ‘분노의 날개’는 “세상에 아직 이런 훈훈함이 있다는 것에 뜨거움이 밀려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남겼다. 아이디 ‘잎싹’은 “사람 냄새를 찾기 힘들다는 인터넷에서, 멀지도 않은 바로 우리 곁에서 일어난 각본 없는 이야기”라고 썼다.

이씨는 사람들의 성원을 다른 이에게 베푸는 것으로 보답했다. 게시판 이용자들이 그를 돕겠다며 모금한 180여만원 가운데 절반을, 역시 게시판을 통해 척추결핵으로 고생하는 사연이 알려진 이에게 기증하기로 한 것이다. 이씨는 지난 2일 게시판에 이런 뜻을 올리며 “이번에 회원님들께서 보여주신 따뜻한 마음에 힘을 얻고 용기와 희망도 가지게 되었습니다”라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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