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 돌팍고개에서 군인들이 ‘검은색 종류의 뉴그랜저’로 알려진 동해안 총기 탈취사건 용의 차량을 찾기 위해 선별 검문검색을 하고 있다. 남양주/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동해에서 일어난 군 총기탈취 사건은 범인들이 무장한 군인들을 대상으로 치밀하고도 대담하게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이들이 추가 범행을 노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담한 범행수법=강원도 동해시 육군 ㅇㅇ부대 소속 권아무개 중위와 이아무개 상병은 20일 밤 10시10분께 한섬포구 해안에서 철책선을 따라 순찰 근무를 돌고 있었다. 괴한 2명이 앞서 걷던 이 상병에게 다가와 길을 물었다. 이 길은 평소 밤늦게까지 기도원과 카페를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터라 이 상병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괴한 한명이 이 상병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움직이지 마라”고 위협했다. 뒤에서 걷던 권 중위가 “뭐야”라고 소리치자, 다른 괴한이 권 중위의 왼쪽 팔을 칼로 3차례 찌르며 쓰러뜨린 뒤 케이블끈으로 손목을 묶었다. 괴한들은 이 상병도 무릎을 꿇게 한 뒤 손을 묶었다.
이들은 권 중위의 케이-1소총 1정과 실탄 30발, 이 상병의 케이-2소총과 무전기 1대를 뺏었다. 이어 군인들의 눈을 테이프로 가리고, 다른 괴한 1명이 미리 타고 대기 중이던 뉴그랜저 승용차 트렁크에 군인들을 태우고 눈을 못뜨게 하기 위해 얼굴에 접착용 스프레이까지 뿌렸다. 당시 2~3m 앞에는 초소가 있었지만 근무 중인 군인은 없었다. 괴한들은 보름달이 떠서 주위가 밝은 상황에선 군인들이 초소를 비우고 순찰근무만 실시한다는 점을 노리고, 순찰근무 시간 등을 미리 파악하고 신속한 도주를 위해 차량을 준비하는 등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다.
또 차 안에 갇혀 있던 이 상병이 차량이 동해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잠시 정차했을 때 뒤따라오던 승합차의 미닫이 문이 여닫히는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해 범인 3명 이외에 추가 공범이 더 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괴한들은 동해고속도로에 접어들어 약 3㎞를 이동한 뒤 차를 세우고 군인들을 끌어내렸다. 이어 두 군인의 발목까지 묶고 입에는 목장갑을 넣어 테이프를 바른 뒤 얼굴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강릉 방면으로 달아났다. 괴한으로부터 풀려난 두 군인은 포박을 풀고 700m 떨어진 군 부대로 달려가 사건을 알렸다.
추가 범행 우려=군경 수사당국은 2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괴한들이 무장한 군인들을 상대로 대담하게 범행을 저지른 수법에 주목하고 추가 범행을 노린 범죄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과거에 군부대 총기를 탈취해 은행 강도를 저지른 범죄의 모방범죄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2002년 3월9일에는 고교 동창생인 20대 초반의 범인 4명이 서울 남현동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단 철조망을 자르고 3m 높이의 담을 넘어 들어간 뒤 경계근무 중이던 군인 2명을 제압하고 소총 2정을 탈취해 서울 상봉동 한 은행지점을 턴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들은 이어 해병부대에서 실탄 400발까지 훔쳤으며, 2주일 뒤 은행강도를 벌였다.
수사당국은 이에 따라 이들의 도주경로 파악과 은신지 추적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동해/이호을 박상철 기자 he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