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을 하루 앞둔 29일 오후 제1011회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수요시위가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렸다.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와 시민·학생 등 300명이 노래패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위안부 할머니 2명, 사후 청구권 정대협에 위임
‘나비기금’ 조성키로…첫 대상은 민주콩고 여성
‘나비기금’ 조성키로…첫 대상은 민주콩고 여성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일본군 위안부 김복동(86)·길원옥(84) 할머니가 일본 정부로부터 법적 배상금을 받게 된다면 그 돈을 전쟁피해 여성을 돕는 데 쓰기로 했다고 29일 밝혔다. 정대협은 이를 위해 ‘나비기금’(가칭)을 만들기로 했다. 나비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상징한다. 애벌레 기간을 거쳐 화려한 날개를 펼치는 나비처럼, 할머니들도 아픈 과거에서 벗어나 자유롭길 바란다는 의미다. 나비기금의 첫 지원대상은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레베카 마시카 카추바이다. 그는 1998년 콩고 내전 당시 군인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경청의 집’(Listening House)을 세워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전쟁피해 여성들을 돕고, 그들의 아이를 입양해온 활동가다.
나비기금 마련은 할머니들의 사후 배상청구권을 정대협 쪽에 위임한다는 점에서 유언의 의미도 짙다. 지난 28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정대협 쉼터에서 만난 김 할머니는 “우리가 (전쟁피해를) 당했으니까 그 사람들도 우리와 같이 당하지 않았겠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나비기금 설립을 결심한 이유를 설명했다. “늙고 병들어 하늘 아래 엄마라고 불러줄 자식 없이 나이가 들었는데 이제 내게 들어오는 모든 것을 나누고 싶었어.”
옆에 앉아 있던 길 할머니가 말을 거들었다. “조금만 아프면 마음에 오래 품고 있지도 않겠는데 너무 아프니까, 열세살에 당해서 여든넷이 될 때까지 가슴앓이를 하고 있으니까 일본의 법적 배상과 사과를 포기할 수 없었어. 일본으로부터 꼭 배상을 받아서 그 돈이 우리처럼 아프게 지내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데 사용됐으면 좋겠어.”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이번 결정으로 할머니들이 돌아가시더라도 정대협이 배상청구권을 위임받아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물을 수 있게 됐다”며 “나비기금 설립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는 데에 가장 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이라는 민간단체를 통해 위로금을 전달하는 방식만을 고집하며, 1965년 한일협정에서 합의된 내용 이상의 법적 배상이나 공식 사죄를 할 수 없다는 뜻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정대협 쪽은 한일협정 당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고, 이는 민간 차원의 위로금이 아닌 일본 정부의 법적 배상과 사죄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아시아여성기금을 반대해왔다. 김 할머니와 길 할머니도 아시아여성기금에서 나오는 지원금의 수령을 거부했다.
앞으로 정대협은 나비기금을 별도 재단으로 발전시키고, 일본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법적 배상을 하기 전까지는 시민들의 기부로 전쟁피해 여성들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법률 자문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맡기로 했다.
정대협과 민변은 ‘세계 여성의 날’인 오는 8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정대협 사무실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유언 공포 및 나비기금 발족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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