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변호사들, 공익 추구 ‘착한 로펌’ 실험

공익인권변호사 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맨 앞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한가람·류민희·김재왕·서선영·조혜인·김동현씨. 희망을 만드는 법 제공

영세 인권단체 지원
동네변호사로 지역밀착
이주민 보호 집중 등
비영리 전업활동 늘어
“법제화 길 텄으면”

서울 서대문구 합동에 있는 49.58㎡(15평)짜리 작은 주거용 오피스텔은 여느 변호사 사무실과는 다르다. 이곳엔 지난 2월 창립총회를 열고 활동을 시작한 비영리 공익인권변호사 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희망법) 구성원들의 땀과 열정이 배어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무처 상근 변호사였던 서선영(38)씨를 비롯해 조혜인(32) 변호사, 최근 사법연수원을 수료(41기)한 김동현(31)·류민희(33) 변호사, 로스쿨 1기 졸업생 김재왕(33)·한가람(32)씨 등 제각기 ‘공익의 길’을 고민하던 이들이 한데 뭉친 것은 지난해 8월 말이다. 이들은 풀뿌리 후원을 기반으로 해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익 소송뿐 아니라, 영세한 인권단체 지원, 공익인권법 실무교육 활동을 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열정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사무실 전화기 설치부터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이들은 창립 과정을 고스란히 기록한 백서를 만들 계획이다. 비슷한 일을 시도하려는 변호사들에게 좋은 선례가 되고 싶어서다.

■ 전업 공익변호사 속속 등장 전업 공익활동 등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젊은 변호사들이 늘고 있다. 사법연수원·로스쿨을 통해 배출되는 법조인 수가 많아지면서, 그만큼 다양한 생각을 지닌 변호사들이 늘어난 데 따른 현상으로 해석된다. 또 2004년 활동을 시작한 국내 첫 비영리 전업 공익변호사 모임인 아름다운재단 소속 ‘공감’이 안정적으로 안착한 것도 이러한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다.

‘희망법’ 창립에 앞서 지난해 1월에는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인 김종철(40) 변호사 주도로 공익법센터 ‘어필’이 문을 열었다. 미국 변호사 정신영(29)씨, 오스트레일리아 변호사 어진이(28)씨가 상근 변호사로 합류해 난민·인신매매 피해 등 이주민 인권 보호와 관련된 일을 주로 한다. 관련 단체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의견을 나누고 입법운동 등 연대 활동을 하고 있다. 비영리 활동은 아니지만 지역밀착형 ‘동네변호사’로 나선 이도 있다. 지난 2월 이미연(30) 변호사는 고향인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동 재래시장 인근 건물 2·3층을 빌려 법률사무소 겸 카페를 열었다. 3층 카페는 이 변호사 동생이 운영한다. 직원 없이 홀로 일하는 이 변호사는 “지역 소시민들이나 소상공인들이 편하게 변호사와 상담할 수 있도록 사무실 문턱을 낮추고 싶었다”며 “씀씀이를 줄이고 지방에 살면 충분히 생활비를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공익변호사 후원 기금도 비영리 단체인 ‘어필’이나 ‘희망법’이 지속가능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정기 후원자 확보 등 재정적 지지기반이 필요하다. ‘희망법’ 구성원들은 일단 자비를 들여 활동을 시작했다. 이 가운데 김동현·류민희 변호사는 3월 말 발족하는 ‘공익법률기금’으로부터 3년간 후원을 받을 예정이다. 이 기금은 국내에선 처음으로 공익변호사를 지원하기 위해 조성된 민간 기금이다. 지난해 배의철(34) 변호사를 비롯해 41기 사법연수원 인권법학회, 기독교를 믿는 연수원생 모임인 신우회 회원들이 주축이 돼 조성한 ‘공익펀드’가 그 모태다. 지금까지 541명이 3년간 기부를 약속했다. 배 변호사는 사무실을 마련해 기금 모집과 집행위원회 일을 맡는다. 또 장애 인권, 자본시장, 북한이탈주민 등 특정 분야에 대해 공익활동을 할 수 있는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 네트워크도 구축할 계획이다.

공익변호사 확산을 위해서는 현행 변호사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현행법상 ‘비영리 법률사무소’ 개소는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희망법’은 후원을 받기 위해 법률상 비법인 사단으로 등록을 했다. 소송에 참여하려면 별도로 변호사 사업자 등록이 필요하다. 서선영 변호사는 “공익 활동만 전업으로 하는 법률사무실 개소가 가능하도록 제도적인 틀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현정 기자 [e-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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