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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한미 연합군이 강정을 침공했다, 이 말은 국보법 위반일까

등록 2012-03-23 21:50수정 2012-04-18 11:27

정희진 여성학 강사
정희진 여성학 강사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죽은 사름들이 몽창몽창 썩어
거름 되연 이듬해엔 감저(고구마)
농사는 참 잘되어서. 감저가 목침
덩어리만씩 큼직큼직해시니까”

한·미 연합군이 서귀포시 강정동을 침공했다, 라고 쓰면 국가보안법 위반일까? 이 법은 성문(成文)에 의한 집행이 애매하므로 나중에 따지기로 한다. 문제는 ‘국가’다.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국가는 인구, 영토, 주권으로 이루어졌다는데, 지구상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우리나라일까. 나는 매달 해외여행을 한다. 부지런하면 7만원대에 왕복이 가능하다. 내가 가는 해외는 제주. 육지 밖, 문자 그대로 해외(ab/road)다. 육지 중심 사고에서 해외는 국외를 의미하므로 제주도는 대한민국 영토가 아니다.

서울의 식당 차림표들은 “쌀 국내산, 쇠고기 호주산”으로 표기한다. 제주에 가면 “쌀 국내산, 돼지고기 제주산, 고등어 제주산”은 기본. “성게 가파도산”이라고 적어 놓은 식당도 있다. 이 논리대로라면 제주는 국내가 아니고, 가파도는 제주가 아니다. 제주시 고산 기상대에서 서울까지 거리는 470㎞, 후쿠오카는 400㎞다. 육지의 관점에서 제주는 ‘변방’이지만, 태평양에서 보면 대한민국의 관문이다.

한반도에서 앤더슨의 “민족(국가)은 상상의 공동체”는 늘 논쟁거리지만, 내 생각엔 엉뚱한 논란이다. ‘상상의 공동체’는 민족이 관념이냐 실재냐는 이슈가 아니다. 민족은 상상의 산물이기에 민족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래서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사회가 어디까지를 국토로 상상하고 누구를 구성원으로 상정하는가, 이 유동성 때문에 누구든 언제든 국민에서 배제(포함)될 수 있다. 국민의 개념이나 국경이 확실해서 누구나 보호받으면 좋겠지만(인류 역사상 그런 적은 없다), 그 경계가 임의적이니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이것은 우리의 일상이다. 국익이라는 가능하지 않은 개념으로 대다수 국민의 이익이 박탈당한다.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전쟁터가 되었던 광주, 대추리, 매향리를 생각해보자. 거의 매일 우리 군경은 외적이 아니라 국민과 싸운다. 한국의 시위 장면은 <시엔엔>(CNN)의 단골 그림이다. 내전과 국가 간 전쟁의 구분은 모호하며 전자의 희생자가 훨씬 많다.

현기영의 <순이 삼촌>은 1978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발표되었고 이듬해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내가 가진 책은 정가 3000원, 초판 2쇄본이다. 일반적인 소개, “4·3을 소재로 한 최초의 작품으로 작가는 중앙정보부에서 고문을 당했다”는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나는 이 작품을 표현할 능력이 없다. 김원일의 발문(“진실에의 치열성”)을 빌리면, “나는 차츰 형(작가 현기영)의 고향을 이해하게 되고, 1948년도의 그 비극을 함께 사랑하게 되었다. 우리는 마치 그 처형의 장소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유복자의 입장으로 돌아가 폭도를 응징하고 토벌군을 지탄하며… 피를 됫박으로 쏟으며 꼬꾸라진 양민이 되기도 하면서….”(285쪽) 나 역시 그 비극을 사랑한다.

세번 읽었는데, 고3 겨울방학 때는 제목 순이 삼촌이 남성, 즉 ‘순이의 삼촌’인 줄 알 정도였다. 두 번째는 김대중 정권 출범과 4·3 발발 50주년이 맞물린 1998년 최초의 공론장이 되었던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하면서,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위해서다. 4·3은 건국(혹은 분단)의 시작과 역사를 공유한 망각, 금기, 무지의 영역이었다. 15년 전 이 작품은 내 삶의 전환점, 격동의 모퉁이가 되었다. 나름 수많은 결심을 했다. 코너를 돌아 모르는 곳에 들어설 때까지 내 앞에 무엇이 버티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그 긴장은 ‘진실’이라는 신세계에 대한 두려움, 혼란, 호기심, 쾌락…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이 긴장이 나를 살게 한다는 것이다.

오늘의 메모를 해석할 길이 없다. 한날한시 대량학살, 집집마다 제삿날이 같다. 마을 고구마밭에서 총살당하고 밭에 안 들어가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이마빡을 쪼사” 도륙당한 시신이 썩어 거름이 된 덕에, 고구마 농사만 잘되어 크기가 베개만했다. 그해가 흉년임에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부모 형제의 다른 모습인 그 고구마를 먹지 못했다.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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