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2개 계열사 동원 확인하고도 진척 못시켜
물산·전자 직원 5명만 검찰 송치…부실수사 논란
물산·전자 직원 5명만 검찰 송치…부실수사 논란
경찰이 이재현 씨제이(CJ)그룹 회장 미행 의혹 사건의 ‘윗선’을 밝히지 못한 채 수사를 마무리했다. 경찰은 미행에 직접 가담한 삼성물산 감사팀 직원 외에 삼성전자 등 다른 계열사 감사팀까지 사건에 관여한 사실을 밝혀내고도 수사를 더 진척시키지 못해 ‘부실수사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9일 이 회장을 미행한 혐의(업무방해)로 이아무개(44) 부장 등 삼성물산 감사팀 직원 4명과 이들이 사용한 대포폰을 구입한 삼성전자 나아무개(43) 차장을 불구속 입건하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 수사 결과, 삼성전자 감사팀 소속인 나 차장은 지난 2월7일 서울 종로 세운상가에서 대포폰 5대를 구입했고, 다음날인 8일 미행에 사용된 렌터카를 빌린 것으로 드러났다. 또 2월9일부터 21일까지 삼성물산 감사팀 소속 ‘미행팀’ 4명은 대포폰으로 하루 평균 40여통의 전화를 주고받았다. 특히 이 부장은 같은 기간 나머지 대포폰 1대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윗선’과 130여차례 통화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대포폰 발신 기지국을 추적한 뒤 이재현 회장의 출근 동선 등과 비교해, 삼성물산 직원들의 미행 사실을 파악했다. 경찰 관계자는 “관련자들이 혐의를 모두 부인했지만, 나 차장이 개인 휴대폰으로 대포폰 업자에게 7~8차례 전화를 한 내역, 미행에 가담한 4명이 자신의 집에서 대포폰을 사용한 사실 등을 밝혀내 이들의 미행 사실을 입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미행에 삼성그룹 2개 계열사 감사팀 직원들이 동원된 것으로 미루어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개입했을 개연성이 크다.
하지만 경찰은 ‘윗선’이 누구인지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윗선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포폰은 삼성물산 서초사옥, 삼성전자 서초사옥이 모여 있는 서울 서초2동 인근 기지국에서만 사용됐다”며 “지난 3월26일, 이번에 입건된 5명의 자택과 개인 휴대폰, 삼성물산 감사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에서 기각해 추가 수사가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수사에 대한 강제 처분은 최소 한도에서 해야 하며 소명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수사에서 윗선 개입이 드러나지 않았다 해도 이 사건으로 삼성의 해명은 설득력을 잃게 됐다. 애초 삼성은 “이 회장 집 바로 옆에 호텔신라 관련 부지가 있어 물산 직원들이 사업성 확인차 갔던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씨제이그룹은 “미행의 윗선이 밝혀지지 않은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하지만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미행이라는 점이 밝혀진 이상 삼성이 지금이라도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미행 사건에 대해) 아무런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정환봉 김진철 조기원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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