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 병상에서 만난 문정현
“지나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자동차 엔진 소음만 들리던 차 안에서 문규현(63) 신부(이하 작은 신부)가 침묵을 깼다. “네?”라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괜찮아질 거란 얘긴지, 순간 헷갈렸다. 오는 길에 나눈 대화들이 스치듯 떠올랐다. 추락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문정현(72) 신부의 상태와 4·11 총선 결과, 총선 뒤 곧바로 재개된 제주 해군기지 건설 공사. 그리고 이를 저지하다가 연행된 성직자와 활동가들에 대한 얘기들…. “성판악에만 당도해도 운전하기 수월해질 거야.” 작은 신부가 뒷말을 붙였다. 긴장해서 핸들을 꼭 쥔 채 운전하는 기자가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멋쩍게 웃을 수밖에. 하루 내내 들었던 말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난 13일 밤이었다. 작은 신부 일행 넷과 기자는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를 잇는 국도를 타고 강정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난코스 도로 위에 짙은 안개비까지 흩뿌려 한치 앞이 보이질 않았다. 백미러로는 칠흑 같은 어둠만 달려들었다. 숲터널을 이룬 나무들도 긴 손가락을 들고 달려드는 마녀처럼 괴괴했다.
공교롭게도 차가 달리는 국도의 이름이 ‘5·16 도로’였다. 1967년 완공된 제주도의 이 첫 국도에,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5·16이란 이름을 붙였다. 제주도 개발의 시작이라는 상징 속에, 5·16 쿠데타의 당위성을 슬쩍 묻은 것이다. 그는 18년 장기독재의 길로 치달았고, 1975년 ‘인혁당 사건’으로 문정현 신부와는 ‘악연’을 쌓았다. 그리고 지금, 그의 딸 박근혜(60)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4·11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며 여권의 명실상부한 대권주자 자리를 굳히고 있다. 그는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을 “이념에 따른 반대”라고 일갈하며, “생명·평화의 성지” 강정마을 지킴이로 나선 문 신부와 각을 세우는 모양새다. 끊지 못한 ‘악연’은 시도 때도 없이, 이곳 제주에서까지 마주치게 된다.
작은 신부 등은 이날 병원에 누워 있는 문정현 신부를 보고 오는 길이었다. 동행한 여성 셋은 재개된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공사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연행됐던 8명 중 일부다. 이들은 제주 동부경찰서에 풀려나자마자 한달음에 제주대병원으로 달려왔다. 병상의 문정현 신부는 링거줄이 뽑혀 피가 나는 줄도 모른 채, 이들을 하나씩 꼭 끌어안아주며 연신 “장하다”고 칭찬했다. 부러진 오른쪽 손가락뼈와 허리뼈(요추 3·4·5번)가 붙으려면 아직 한참은 더 기다려야겠지만, 한때 최고 200까지 치솟았던 문정현 신부의 혈압은 이날 처음으로 120~130대로 안정됐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연행 당시) 총선 결과 때문에 다들 정말 암담해했거든요. 야당에 욕도 많이 했지만 내심 기대를 했었나봐요. 그런데 (여당이) 선거 이겼다고 보란 듯이 공사를 재개하잖아요. 반짝 들어서 치우면 될 걸 굳이 연행까지 하면서. 쉬운 싸움이 아니란 걸 알았지만 참 힘드네요.”
문정현 신부가 말했다. “실망할 이유 없어. 우리가 덜 싸웠다고 생각해야지. 정치인들이 언제 먼저 움직이는 것 봤어? 꼭 우리가 사는 만큼만 움직이는 사람들이라고. 여기서 다시 시작하면 돼. 옳은 건 언젠가는 이기고, 옳은 건 죽어도 되살아나게 마련이니까.”
엿새 뒤인 19일 문정현 신부는 퇴원해 강정마을로 돌아갔다. “어떤 사람들은 해군기지가 들어오면 내가 제일 먼저 도망갈 거라고 욕을 해. 하지만 두고 봐. 난 주민들이 강정마을에 남아 있는 한 계속 함께할 거야. 끝까지 함께하는 것, 그거면 되는 거야.”
제주/글·사진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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