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4일 서울 서초사옥으로 출근하는 도중 기자들에게 이맹희·숙희씨와 관련한 얘기를 하고 있다. 아시아경제 제공
삼성 특검때 “상속재산” 말 바꿔
“상속주식은 이미 처분…차명주식 별도로 사뒀다”
보유경위 안밝혀…상속 침해시점 다른 해석 여지
이맹희쪽 “자금원천은 선대 유산…달라질건 없다”
“상속주식은 이미 처분…차명주식 별도로 사뒀다”
보유경위 안밝혀…상속 침해시점 다른 해석 여지
이맹희쪽 “자금원천은 선대 유산…달라질건 없다”
형제들과 상속분쟁을 벌이고 있는 이건희(70) 삼성회장이 ‘위험한’ 답변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분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삼성전자·삼성생명 주식 가운데 일부는 선대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게 아니라 자신이 별도로 구입한 주식이어서, 다른 형제들과 나눠 가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문제의 주식이 모두 상속재산이라는 2008년 삼성특별검사팀의 수사결과와 다른 주장으로, 만약 ‘별도로 구입한 주식’의 자금원이 비자금 등으로 밝혀질 경우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 회장이 이런 답변서를 제출한 건, 특검의 모호한 수사결과와 재산분쟁 사이에서 ‘줄타기’가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회장의 변호인은 지난 27일 제출한 답변서에서 “선대 회장이 물려준 삼성전자 주식은 이미 처분했고, 차명으로 보유하던 225만여주는 이 회장이 별도로 사뒀던 주식”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주식이 만들어졌는지 구체적 경위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우선 이 회장은 자금의 출처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삼성특검 수사결과와 충돌하는 걸 피했다. 당시 삼성특검은 “자금원을 명확히 밝힐 순 없지만, 이 회장 쪽은 선대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상속재산을 관리하고 있는 재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이 회장 쪽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당시 특검에 파견됐던 한 검사는 “차명재산의 자금원이 횡령자금인지 여부를 밝히는 게 수사팀의 목적이었고, 돈의 유통 형태를 보니 비자금으로 보이지는 않아 상속재산이라는 삼성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라며 “최초 출발한 돈의 성격은 특검도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수사팀의 설명대로라면, 이 회장이 상속받은 주식을 매각해 그 자금으로 현재의 주식을 다시 구입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은 셈이다.
또 이 회장은 ‘선대 회장의 주식이 이미 매각됐다’고 주장함으로써 상속회복 청구권의 제척기간(일정 기간 안에 행사하지 않으면 권리가 소멸되는 기간)을 계산하는 데도 유리한 해석의 여지를 갖게 됐다. 현행 민법상 ‘상속권의 침해행위가 있는 날로부터 10년’ 동안 상속권의 회복을 청구할 수 있는데, 증여받은 주식을 매각한 날이 상속침해가 발생한 날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검 자료를 보면, 차명주식의 매매는 최소 20년 전부터 이뤄져왔다. 이 회장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제척기간 10년은 오래전에 지났고, 형제들은 주식 반환을 요구할 수 없다.
하지만 소송 상대방인 이맹희(81) 전 제일비료 회장 쪽은 법리적으로 복잡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승산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법무법인 화우 관계자는 “선대 회장에게 물려받은 주식을 매각해 225만여주를 새로 매입했다고 하더라도, 그 자금의 뿌리가 선대 회장의 유산인 만큼 형제들의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며 “새로 구입한 주식 역시 차명이기 때문에 이 주식이 실명전환된 2008년 12월 상속침해가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오히려 이건희 회장은 상속재산이 아니라면 무슨 돈으로 225만여주를 구입했는지, 왜 굳이 차명으로 구입을 했는지를 밝혀야 한다”며 “자금 원천을 해명하지 못할 경우 비자금 조성 의혹만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건희 회장과 이맹희 전 회장의 주식인도 등 청구소송은 오는 3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첫 재판이 열린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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